보고 듣고 느낌2012. 4. 21. 23:45

작년 여름, 한참 터키 여행을 준비하던 때에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에서 초연한 뮤지컬 '모비딕'을 보고 와서 '소리와 음악의 감동'이라는 짧은 감상을 남겼더랬다. 그리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올 봄, 뮤지컬 '모비딕'은 같은 곳의 연강홀로 무대를 좀더 넓혀 다시 배를 띄웠다. 이렇게나 가슴 뛰는 작품이 되어.

뮤지컬 '모비딕'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그 사례가 있었다고 하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된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므로. '액터-뮤지션'은 말 그대로 연기자와 음악인을 겸하는 아티스트를 말한다. 그렇다고 노래 부르는 아이돌이 나오는 뮤지컬을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란 작품 안에서 '액터-뮤지션'이 구현되는 것이다. 즉 연기자가 극 안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외국의 사례는 몇 번 글로 소개받았었으나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었다. 뮤지컬 '모비딕'은 나의 첫 액터-뮤지션 뮤지컬이었고, 뮤지션이 연기를 하기 위해, 연기자가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멜로디가 쪼개지고, 또 겹쳐지는 너무나 신선한 편곡의 묘미와 소리의 향연을 내게 선사했다. '소리와 음악의 감동', 한 구절로 표현된 초연 때의 내 감상이다.

뮤지컬 '모비딕'은 조용신 작, 연출가와 정예경 작곡가를 필두로 한 창작진이 '우리 새로운 거 한 번 해보자' 해서 1년여동안 워크숍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고집하기 위해서는 연주와 극 연기에서 아무렴 연주에 비중이 더 실렸을테고, 단계를 밟아 수정 보완해 왔다 하더라도 작품의 드라마까지 욕심내기엔 1년은 아무래도 부족했을 터였다. 초연의 아쉬움은 여기에서 나왔다. 사소한 효과음까지도연기자가 악기를 통해 직접 소리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기교의 연주는 그 자체로 연기가 되었지만, '모비딕'의 작품 철학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올해 다시 만난 무대는 줄거리가 있는 콘서트같단 느낌이 없지 않았던 초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비딕'의 원작소설을 모른다 할 지라도 충분히 극을 이해할 수 있게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냈다. '인간과 자연과 교감'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 의식에 가장 가까운 인물인 퀴케그의 캐릭터가 분명해 진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초연 때 배우가 흰색 자켓을 덧 입는 것이나, 지금 무대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나, 콘트라 베이스가 흰 고래 모비딕을 형상화하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다.

극의 이해를 돕는 것에 무대 또한 한 몫 했다. 공연을 보기 전 새로운 '모비딕' 무대에 대한 기사를 접해서 대략의 스케치까지 봤었음에도,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무대는 나로 탄성을 자아냈다. 바다에 침몰해 버린 난파선. 불안하고 위태롭고 위압적인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 택했다는 경사무대는 실제 배우들이 움직일 때마다 아슬아슬한 항해를, 모비딕과의 죽음을 건 사투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했다. 피아노의 위치가 초연 때 중앙에서 이번 공연에서 바깥쪽으로 옮겨진 것도 더 나아진 방향같다. 피아노를 담당하는 이스마엘에게 관찰자라는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부여했으므로.

악기를 연주할 줄 알면서 캐릭터에 부합하는 연기자를 찾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을터, (프로그램을 보니 같은 배역을 연기하지만 사용하는 악기가 다른 더블 캐스팅도 있는데다, 같은 악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뮤지션이 해오던 연주 방식이 달라 악보도 모두 달랐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뮤지션들에게 노래와 연기를 주문해 뮤지컬 무대에 세우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었겠는가. 당연히 그들의 연기는 베테랑 배우들에 훨씬 미치지 못하나, 그래도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건 초연 대비 일취월장한 연기를 보여주기까지의 그들의 노력과, 그들은 다른 배우들이 하지 못하는 연주의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 이스마엘 신지호, 당신의 피아노는 정말 최고! 퀴케그의 지현준은 연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나, 역시 KoN이 들려주는 소름끼치는 바이올린 퍼포먼스가 그리웠다. KoN 캐스팅으로 봤다면, 여전히 퀴케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을까? 그럴지도.-_-. 광기어린 중심인물 에이헙의 황건은 이 작품으로 인기가 치솟는듯 하니 더 말하지 않지요.

마지막으로 내가 최고로 반했던 연출을 꼽는다면, 도입부분 망자들의 등장 장면. 조명의 어우러짐은 정말 최고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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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11. 11. 27. 16:46

예전에 한 평론가는 뮤지컬계에서 배우 '조승우'의 영향력에 대해 "흥행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냥 이 배우가 출연을 원하는 작품을 만들라."라고 했다. 이렇다고 하면, 영화를 제하고, '조승우'의 제대 후 첫 뮤지컬 출연작은 물론 <지킬앤하이드>였으나, <지킬앤하이드>는 지금의 '조승우'를 만든 작품으로 '조승우'의 재출연이 그리 놀라울 게 없었으니 제껴 두고 나면, 바로 이 작품, <조로>가 의미가 있게 된다. 언젠가부터 너무 화려하기만 한 대형 뮤지컬에 조금 질린 나같은 사람까지도 극장으로 불러낸 데에는 아무렴 '그'를 비롯한 신뢰를 갖게 하는 화려한 캐스팅, 그들의 선택이었다는 거다.

뮤지컬 <조로>는 잘 알려진 스토리와 영웅 캐릭터, 화려한 플라멩코와 액션 등 작품 그 자체로도 충분히 기대치를 높인다. 그러나 잠깐 언급했듯, 화려하기만 한 작품은 때로 의외로 관객의 마음을 싱겁게 내려놓지 않던가. 그래서 조금 불안했던 게 사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난 지금은, 예상한 바 반, 의외로 반 정도 되겠다. 충분히 즐겁기도 했으나, 역시 극장을 나설 때 감동의 도가니? 모 이렇지는 않더라고.

폭군 라몬의 탄압에 괴로워하는 시민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라몬 일당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시민들을 구해 주는 영웅 조로의 활약상과 그의 숨겨진 정체, 주변 인물과의 관계들이 <조로>의 스토리다. 그러하니 무대 위의 <조로>의 매력은 일단은 화려한 검술 액션. 극장에 들어서니 관객 위를 가로지르는 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과연 우리의 영웅은 언제쯤 저 줄을 타고 날아줄 것인가는 나의 관점 포인트 중 하나였는데, 라몬이 루이자와 강제 결혼식을 올리려는 마지막 순간, 멋지게 날아서 루이자를 구하더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액션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결투 이미지를 형상화한 군무 형태로 보여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실제로 칼 부딪히며 싸우는데, 하핫. '조승우'의 작은 체구는 날렵하긴 한데, 각은 좀 아니더라구요. 반면 제복 입은 라몬, 최재웅은 좀 태가 나요.

주인공 디에고는 공부하라고 유학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집시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루이자의 설득으로 디에고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네즈를 비롯한 함께 놀았던 집시들이 동행한다. 그래서 집시들의 플라멩코가 자연스럽게  <조로>의 무대를 여러번 채운다. 스페인의 정열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들의 즐거운 기운은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이네즈, '김선영'의 시원시원한 창법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앙상블의 에너지를 최고로 끌어올린다. 모든 작품에서 변화를 보여준다기보다, 한 캐릭터가 그저 조금 변주만 될 뿐이라는 인상이 아쉬우나, 그녀의 노래, 춤, 연기에 대해 역시 흠은 잡을 수 없다.

아무래도 뮤지컬 <조로>는 위의 두 가지, 액션과 플라멩코가 전부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의외로 반한 것은 하얀 의상을 입은 여자 앙상블들이 민중들의 아픔을 노래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한국적 정서, 한을 공감케 하였는데, 무조건 슬픔을 배가시키기 위해 늘어지는 것과는 다른 애수가 있었다. 앙상블이지만 한 구절씩 솔로 파트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가창력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맘에 들었던 장면은 루이자와 조로의 동굴 장면, 서로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르는 듀엣 씬은 모든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조승우'가 이런 작품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조로>에는 애드립스러운, 처음엔 조금 의심했으나 애드립은 아닌 듯 하다, 코민 코드가 꽤 많이 등장하고, 상당한 비율로 주인공 디에고이자 조로가 담당하는데, 나의 편견인지 모르나, '조승우'하면 좀 진지해지지 않나?, 게다가 춤까지 연결시키면...... <헤드윅>같은 작품과는 또 다르잖아. 그리고 숨이 가빠 그랬는지, 공연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습 부족인지 두 번의 대사 실수까지 들리니, 조로 캐릭터는 그에게 괜한, 과한이 아니라, 욕심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대 위 배우가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구나가 전해졌다면 관객마저 즐겨야 하는가?는 아직까지는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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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10. 12. 19. 13:59
Billy Elliot The Musical in London Victoria Palace Theatre


한국판 빌리 엘리엇이 어떤 모양을 갖고 있을는지 그 궁금함 하늘을 찌를 듯 한 것을, 작품의 성패에 빌리의 역할이 99%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기에, 대한민국 1대 빌리들이 공연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 많이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참고 참으며 미뤄왔던 빌리 엘리엇을 드디어 관람했다.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하더라도 3시간 공연은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빌리를 만나는 시간이라면 그저 일분일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쉽다고 밖에.

 

번역과정에서 코믹코드를 놓치지 않고 한국화시켜 주어 틈틈이 웃음을 줬고, 할머니의 회상 신, 죽은 엄마의 등장 신 등에서는 따뜻한 감성이 전해졌다. 광부들의 파업과 발레수업이라는 전혀 상반된 상황이 동시에 대립적으로 한 무대에 재현되는 연출은 영화에서보다 더 그 시대의 아픔을 경험하게 했다. 영국 초연 연출은 원작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달드리가 맡았는데, 그는 아마도 영화에서부터 이런 대립적 장면을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원작 영화가 음악과 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음악과 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회자되는 성인 빌리(빌리의 그림자)와 함께 춤추는 ‘Swan lake’ 장면이나, 최고의 명장면 ‘Electricity’는 물론이거니와, ‘Angry dance’ 장면 또한 너무 강렬해서 나는 1막이 끝난 후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 그야말로 Electricity(전율)에 빠진 상태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2년여 전 한국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누가 빌리를 할 것인가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내가 만난 빌리 이지명군, (다른 세 아이들도 이만큼 해 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와우! 어떤 분의 표현대로 누나들 지갑 좀 열게 하겠다.

 

그러나 영국에서처럼 합격통지서를 받은 후 빌리가 가족들을 놀래켜 주려고 트릭을 쓰는 것으로 연출된 장면은 여전히 나는 아쉽다.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이 겉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조용히 눈물이 되어 나오는 영화에서의 그 장면이 나는 너무 좋은데…..

 

이 작품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너무 예쁘고 귀여우신 할머니, 아들의 꿈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탄광으로 향하는 아버지, 끝까지 거칠지만, 동생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형, 무뚝뚝해 보이지만, 빌리의 재능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윌킨슨 선생님, 너무 좋은 친구 마이클 (오 마이클 역의 김범준군 완전 예쁘게 생겼다.ㅋㅋ),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빌리.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물론 음악과 춤이겠지만, 그 춤이 일회성 눈 정화제로 끝나지 않고 꾸준한 감동으로 남는 것은 이 좋은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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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10. 11. 15. 22:28
1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았다. 10주년이라는 수식어가 말하듯 이 작품은 잘 알려진 괴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0년 전 처음 무대에 오른 대한민국 순수 창작이다. 원작 소설을 떠올려 볼 때, 뮤지컬이라는 장르와는 영 어울리지 않을 듯 한, 혹 어떻게 잘 요리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뻔한 멜로 드라마. 그래서 지난 10년동안 아마도 나는 무심했었나보다. 동갑내기 잡지 <더뮤지컬>이 10주년을 맞아 매달 한국 뮤지컬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세 번째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무심했을 터였다.

예매를 할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일정들 탓에 공연장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꽤나 피곤했다. 그래서 살짝 걱정을 했다. '졸면 어쩌지?'. 예전같지 않은 체력인데다 아무래도 원작이 서간체 소설이지 않은가..... 그런데 작품은 원작에 참 충실하였으나 신기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도 그러하지만, 시작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 않다. 이 작품은 강렬했던 레드의 끝 장면 역시 지울 수 없는 인상이었으나, 나는 정말 편지를 읽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던 첫 장면이 참 인상깊었다. 다양한 형태의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던 무대.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듯한 부드러운 몸짓. 이런 색다른 도입부, 연출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배우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 동작들을 하고 있을까? 나 외에 다른 관객들은 무엇을 느낄까?. (<더뮤지컬> 11월호에 김민정 연출가는 이 오버추어 장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공연은 막이 열리면 인물로 들어가야 하는데 최전선에 인물이 아닌 배우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출발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 중략 -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사랑이죠. 베르테르의 주제어였어요") 여러가지 생각들로 극에 대한 호기심이 자극됐고,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한 터라 답을 내지 못해 살짝 괴로워질 때 쯤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무대이다 보니 많이 압축된 탓이겠으나 베르테르와 롯데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개연성이 부족해서 잠깐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억지같기도 했다. 더더욱 롯데의 감정선은 내 감성으로는 이해에 부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넘어 슬픈 감성을 전하는 장면들이 놀라웠다. 인물들 각자가 서 있는 곳을 적절히 구분시켜 주는 무대의 사용이 참 좋았다. 그리고 베르테르와 롯데가 데이트? 산책하는 그 언덕, 베르테르가 떠나는 배이기도 하고 알베르트가 도착하는 배이기도 하다. 게다가 베르테르와 롯데가 격정적인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알베르트는 무려 그 2층에 묵묵히 걸터 앉아 있다. 그리고 베르테르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레드 역시 그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 공간이 정말 얼마나 매력적이던지.(나는 언젠가부터 뮤지컬을 볼 때 무대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좀 다르다고 느꼈다. 잘한다 못한다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정적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극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듯 해서 이것 또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도 노래에 대한 감상은 빼지 않는다면 알베르트 민영기는 괜히 성악 전공자가 아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정도.

음악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정적이었는데 지루하지 않고, 그 슬픔이, 그 사랑이 전해지더라는 게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그러니깐 머리로 생각하면 찌질하기 짝이 없건만,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런 고백을 하고 말았단 말이다.

사랑은, 그러니깐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뱀다리. 이전에 뮤지컬 갈라쇼에서 한 두번 듣고 좋아했던 '하룻밤이 천년'이 이렇게나 슬픈 곡인 줄 몰랐다. 그동안 무심했던 게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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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10. 9. 6. 16:18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를 보았다. 2인극이라서 솔깃, 출연진이 많지 않아 오히려 집중도를 높이는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워낙에 높다. 신춘수 프로듀서의 연출데뷔작이라기에 한번 더 궁금했더랬다. 그리고 한 때 나는 그냥 '김종욱' 자체인 록군의 옆선에 정신 못 차린 전력이 있지 아니한가? -_-;;

이야기의 시작은 토마스가 엘빈의 송덕문을 읽기 위해 장례식장에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린시절 분신처럼 함께 했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덤덤하게 반응하고 싶지만, 나는 토마스가 그랬을 거라고 느꼈다. 요즘말로 최대한 쿨하고 싶었을 거라고, 도무지 그의 죽음이 이해도 되지 않고, 이건 극 속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으므로 관객인 나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송덕문 또한 쉬이 써지지 않는다. 명색이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말이지.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야 친구를 기억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많이 엘빈의 이야기로 채워졌는지,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엘빈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우정'을 이야기할 때 과거 추억 회상하기만큼 진부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은데, 이 작품은 작가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의 직업, 즉 '글쓰기'에 대한 담론?을 펼치면서 상투성을 빗겨 가는 게 좋았다.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 또한 흔한 이야기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 '멋진 인생', 그리고 '나비 효과'까지 쉬이 묻히지 않을 키워드를 남긴 것이 나는 참 신선했다. 그것마저 너무 교훈스러웠다고 하면 그건 되려 단점이 되려나?

2인극을 펼치기엔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은 좀 넓지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서재를 구현한 듯한 무대는 생각보다도 더 깊이 있게 채워져 있었고, 종이마저 꾸준히 흩날려 주니 허전함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토마스와 엘빈의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이 스토리의 주축이다 보니 특별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특별한 무대와 소품이 필수적인 게 아니어서 무대가 덜 채워졌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느낌은 없었다. 눈송이가 날리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갈색톤의 배경이 정말 잘 받쳐 주더라니까.

신성록을 무대에서 처음 봤을 때, "김종욱 찾기"였다., 노래를 참 조심스럽게 부른다고 느꼈었다. 그 땐 신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신성록은 노래를 본래 그렇게 부르는구나;;; 내 취향은 아니나 그래도 워낙에 받쳐 주는 비쥬얼이 있으니 용납할 수 있다. 게다가 경직되어 있는 토마스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간간히 보여주는 웃음코드는 충분히 귀엽고 매력적이었으니까요. 이창용은 기대이상이었다. 내가 엘빈을 오해하지 않았다면 참 엘빈스러웠다고 할까?

프로그램을 보니, 신춘수 프로듀서는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꽤나 고생을 하신 듯 하다. '딱히 어떤 지점을 잡아내기 어렵지만 슬쩍 극이 늘어지기도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살짝 졸기도 했거든요, 전 날 거의 날밤 샌 이력이 있긴 하지만...' 이라고 싫은 소리를 전할 수도 있겠지만 데뷔 무대로 이 정도면 후한 점수를 드릴 수 있을 거 같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오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충분히 따뜻했으니.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공유할 기억이 있다는 것.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0. 7. 3. 20:53
2007 뮤지컬 [쓰릴미]


2007년. 충무아트홀 소극장 맨앞자리 정가운데 자리에서 만났던 '쓰릴미'를 3년이 지나 신촌더스테이지 2층 맨뒷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니깐 그렇게 노래노래 부르던 최재웅-김무열 페어 티켓을 구했었단 거다. 꺄욧 >.<

그러나, 사실 공연을 보고 난 후 마음은, 기대만큼의 마음에는 많이 못 미친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아무렴 이 작품은 관객의 집중도를 얼마만큼이나 끌어내느냐에 달렸다. 초연 때 내가 이 작품에 반했던 가장 큰 이유도 숨죽인 채 한 호흡을 끌어낸 긴장감이었으니깐.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3년 전 그 때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리 탓도 있을 것이고, 익히 결말을 알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어떻게 달라졌을까? 비교분석에 촉수를 뻗은 것도 방해를 했다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무대에 딴지를 걸고 싶다. 초연 때 무대를 잊을 수가 없는데, 피아노 한 대가 중앙에 있고, 주변에 회색 블럭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회색 블럭은 그 나름대로 그의 침대가 되기도 하고, 나의 탁자가 되기도 했다. 그들이 있는 장소나 시점은 어차피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단조로운 무대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보랏빛 저 화려한 쇼파는 무엇이란 말인가, 한쪽 구석에는 꽤 고풍스럽게 보이는 나무도 한 그루 서 있네. 이런. 덧붙여 배심원석이라는 좌석이 무대 양편에 생겼다. 혹자들은 그 멋있는 배우들과 그리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관객을 배려한 좌석배치에 환호했겠지만, 내가 작품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음은 당연하다.

또 하나, 너무 에로틱해졌다. 알려진데로 두 주인공은 동성애 관계다. 충분히 에로틱할 수 있는 관계이긴 하나, 그것이 꼭 자극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심리 싸움이라니깐! '쓰릴미'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성공을 한 것에는 분명 멋진 슈트발의 두 남자 배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점점 더 두 사람의 동성애를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쪽으로 온 거 같은데, 그건 말 그대로 자극적이게만 했을 뿐. 작품에 좋은 영향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럼에도 쉽사리 다시 보지 못할 듯 싶은 최재웅, 김무열 페어를 이리 만난 건 행운이었던 것 같다. 최재웅의 목소리와 표정은 어디 흠잡을 데가 없으며, 이제는 너무 스타가 되버린 김무열의 '그'는 역시나 충분히 멋있으니까.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0. 2. 15. 19:18
배우들이 단 한 곡의 노래도 부르지 않는 댄스극을 과연 뮤지컬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초연됐던 그 해 토니상 뮤지컬 부문 작품상을 거머쥐면서 그 형식이 어떠하건 뮤지컬로 분류되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뮤지컬 중에서 특별히 본인은 화려한 춤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쇼 뮤지컬보다는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선호하다 보니 처음부터 댄스 뮤지컬이라고 간판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에 눈길을 준 것은 그 주제 때문이다. 'Contact', 즉 '소통'을 이야기한다고 하니.

작품은 'Swing', 'Did you move?', 'Contact', 이렇게 세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에피소드별로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만 각각은 '소통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소통을 갈구하지만 가장 소통하고 싶은 남편과는 소통이 되지 않는 여인', 그리고 '당장 소통이 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남자'(더뮤지컬 No.76 2010년 1월호 참조) 의 이야기로 큰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초연 연출가인 수잔 스트로만의 인터뷰에 의하면 세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맨 나중에 첫번째 에피소드 'Swing'이 추가되었으나, 이야기가 거꾸로 전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공연을 본 지금 나도 역시 동감한다.

작품을 보기 전 어느 정도는 작품의 성격이나, 형식, 숨겨져 있는 작은 반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반전이라도 몰랐으면 조금 나았을까? 1막을 구성하는 첫번째, 두번째 에피소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좋은 음악에 현란한 춤사위가 계속되지만 역시 노래가 없는 것이 심심했고, 비슷한 동작이 반복되는 듯한 지루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런 작품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이러하였으니 효도선물 받고 오신듯한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1막 후 "무슨 뮤지컬이 노래 한 곡도 안 나와?" 하시며 짜증섞인 실망감을 표하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2막, 세번째 에피소드, '컨택트'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왜 이 작품의 상징처럼 그려지는지도 납득이 갔다. '소통'이란 주제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도 명확하게 제시했다. 스윙댄스의 매력도 물론 충분했다. 그리고, 반전......을 뒤엎는 반전에 대해서 입다물어준 (적어도 나는 몰랐었다.) 여러 매체에 감사했다. 그 반전으로 이 작품이 난 참 맛있었다.

무려 대사까지 있었던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주원의 매력이 새삼스러웠다. 눈에 띌 정도의 예쁘다 싶은 얼굴은 분명히 아닌데, 그녀가 지닌 감히 범접할 수 없겠는 도도한 포스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 너무나 딱이었다. 그리고 마이클 역의 장현성. 춤을 못 추지만, 나중엔 춤으로 소통을 하게 되는 마이클 역을 너무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게 연기일까?, 실제일까?. 실제로 춤을 잘 못 춘다고 했던 인터뷰를 보긴 했는데... ㅋㅋ ^^;

무엇보다 '소통'이란 화두를 꺼내면서 오직 '춤'으로만 얘기할 수 있다고 믿은 연출가 수잔 스트로만의 확신에 박수를 보낸다. 안무가 출신답게 그녀는 '춤'에 대해서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춤'과 '소통'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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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9. 8. 29. 17:51

아무래도 주류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에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뮤지컬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어떤 편견을 가지고 고르려 든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아직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벗어나 보지 못했다물론 대한민국 순수 창작을 제하고 하는 얘기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들어오는 작품마다 대박 행진이었던 프랑스 뮤지컬도 아쉽게도 아직이다서두에 이런 안타까운 고백을 하는 것은 그만큼 나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익숙하단 전제가 깔린다는 얘기다. 제목에서 읽히듯 '일 삐노끼오'는 영어권이 아니다. 이탈리아 뮤지컬이다. 누가 피노키오가 이탈리아 태생 아니랄까봐! ^^;;

자막을 봐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내한공연을 좀 꺼리는 편인데, 잘 알고 있는 피노키오가 소재인데다 이탈리아 뮤지컬의 내한공연은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힘들기에 선뜻 거금을 들였다. 이탈리아 작품이라고 해서 뮤지컬의 기본적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인 피노키오의 모험을 제대로 읽어 보았는가? 창피하지만 난 읽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작품인 줄 새삼 알았다. 공연 역시 그 긴 이야기를 기본적으로나마 모두 담아 내다 보니 2시간30분의 꽤 긴 작품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살짝 지루해지기도 하더라. 아무래도 내가 어른인 탓일까? -_-; 그렇지만 무대의 수준은 절대로 어리지 않았다. 어른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준을 보여 주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적인 에피소드들이 구현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피노키오의 진짜 나무 느낌이 나는 분장, 줄 달린 꼭두각시 인형들의 공연 장면, 의인화된 동물들의 분장, 그리고 파란 머리 달의 요정, 투르키나가 인생에 대해 노래할 때 거울을 통해 피노키오가 복제되는 장면까지. 아무래도 그런 환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다 보니 앙상블과 무대의 활용이 중요해 보였는데, 특별히 무대 활용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적절히 위치를 바꿔 줌으로서 안과 밖으로 동시에 활용한 제페토의 집과 장난감 나라로 가는 자동차는 멈춰 있고 무대배경을 움직여서 이동을 표현했던 아이디어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실용적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닷속. 바닷속 생물들의 움직임을 배경음악만 나오는 가운데 표현했는데, 좀 늘어지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느낌만은 확실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전구불빛으로 고래의 입이 형상화되고 피노키오는 자연스럽게 고래에게 잡아 먹히더만. ^^;;

무대미술과 연출적인 기법들은 사실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닐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 작품으로서 아무래도 다르다는 느낌은 음악과 색감에서였다. 듣기 나름이겠지만 이탈리아어는 확실히 영어보다는 뽀드득거린다. (이런 느낌에 대한 표현에 대한 표준어는 무엇인지? -_-a). 대형공연의 음악들이 그렇듯 이 작품의 음악들도 익숙한 멜로디에 적절한 높낮이로 관객의 감정선을 적절히 조율했는데, 다르게 들린 건 그 뽀드득거리는 언어들이 리듬감을 더한 탓이 아닐까? 그리고 그 비비드 컬러의 의상! 배우들의 움직임에 발랄함을 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어린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수준도 올렸을 테다. 어른인 나도 눈이 꽤나 즐거웠으니. 마지막으로 한국인 관객들을 배려한 깜짝 순간들이 몇 있었다. 나무인형이 완성된 순간에 인형이 살아서 처음 제페토에게 건네는 말을 “(한국어로) 아빠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공연 중 서너 번 간단한 대사를 한국어로 날려준 것.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이 되어 나타난 피노키오는 실제 한국인 꼬마 배우였다. 주인공 피노키오를 맡은 배우의 관객서비스가 특히 좋았는데, 공연이 끝난 후 싸인회(이 싸인회는 미리 선점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정말 체구가 작았는데, 새삼 남자로서 작은 체구가 저 사람의 성장기에 상처인 적은 없었을까?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해 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자막에 신경이 쓰여 무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으나 충분히 보는 즐거움이 있는 무대였다. 피날레를 할 때는 함께 박자를 맞출 수도 있을 만큼 마음에 즐거움이 남았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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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9. 7. 29. 22:30

200612월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다음해 토니상 11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8개 부문 수상이라는 이력이 아니더라도 'spring awakening'에 대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주워 들은 게 있는 관객이면 궁금해서라도 이 작품의 국내공연소식이 반가웠으리라. 나도 그런 관객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공연을 본 이후, 나는 쭉 너무 벅차다.

 

브로드웨이 초연 때 그랬다고 하듯, 이 작품은 현재 국내공연계의 '뜨거운 감자'. 서두에서 언급했듯 워낙에 관객들이 기다려 온 공연인데다,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이 제공했던 뉴스거리들은 국내에서도 똑같이 이슈가 될 것들일테니 당연하다. 그리고 직접 만난 무대는 그 많은 이야기들에 정직하게 답해 준다. 어느 하나도 '헛소문'이 아니었다. 

 

                    무비위크 뉴스에서 이미지 발췌 http://www.movieweek.co.kr/article/article.html?aid=20205

원작은 1891년 독일 표현주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에 의해 쓰여진 동명의 희곡이다. 당시 엄격한 규율의 청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15년이 지나서야 처음 무대에 올려졌을 만큼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이후 110여년이 지나 브로드웨이 역사에 새로운 이력 한 줄을 보태게 되는 뮤지컬로 만들어지는데, 억압적인 기성세대의 오류를 비판한 그 기본정신을 놓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다룸에 직설적이었다던 그 표현방식도 그대로 유지하는데, 무대 중앙에서, 환한 조명아래, 꽤 과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런 장면마다 관객들이 집중하는 것은 그 수위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진정성이다. 나는 매번 슬펐다. 기본정신을 지켰다는 것의 증거일 것이고, 이 작품이 잘 된 작품인 이유일 게다.

 

기본이 탄탄한 원작만의 공이라면 뮤지컬 'spring awakening'이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건 좀 과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택하면서 제작진이 덧입힌 극작, 음악, 연출이 정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원작에 기댄 바가 있으니 극작은 그렇다 쳐도(원작이 있다고 해서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극본의 역할을 절대로 무시하지는 않는 바이다.) 이 작품의 음악과 연출은 정말 탁월하다. 공연을 본 이후 줄곧 오리지날 음반을 듣고 있는데, 곡마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 그들이 분출하고자 했던 것들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공연장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극 속에서 가사 한 줄의 의미보다 그 장면에서 그 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정말 120%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런 음악에 그런 멋진 안무라니. 고개만 까닥거려도 힘이 느껴지는데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Totally Fucked'는 가히 최고일 수밖에.

 

음악이 좋은 작품들은 많다. 음악만으로 그 많은 뉴스들은 욕심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놀라운 건 또 있다. 바로 연출. 기존의 뮤지컬 공식을 완전히 깨 버렸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던 배우가 갑자기 품 속에서 핸드마이크를 꺼내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누가 상상했을까? 다른 배우들의 행동이 멈춰진 완전히 정지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는 배우만이 살아 자신의 속마음을 노래하는 연출은 그 전달력에서 효과를 더했다.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학생들의 동선도 참 좋았다. 하다 못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코러스의 배치마저 좋았다. 작품을 보기 전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의 서면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 사람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갖는 자부심과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는 확신이 느껴져서 참 궁금했는데, 이 사람은 밉게 잘난 체를 해도 그냥 인정해 줘야 할 거 같다.

 

덧붙여 그저 참 예쁘다, 특이하다 생각했던 무대를 얘기해야 한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보면서 빨간 벽돌로 된 무대 벽면 그 자잘한 소품들이 어느 하나 그냥 걸려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그것들마저 참 슬픈 사연들이다. 나중에 혹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공연을 보기 전 먼저 프로그램을 볼 것을 권한다. 작품에 대해 알고 볼 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일 것 같다. 마지막은 뱀발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팬심이므로. 배우들에 관하여. 멜키오를 맡은 김무열은 너무 멋있게 성장을 한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 그 기럭지 얘기만이 아니라. 그의 배우 이력을 두고 하는 말인데, 노래도 날로 나아지고. 모리츠 역의 조정석은 내 타입은 좀 아닌 꽃돌이라 여겼는데, 그 배우가 인정받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 당찬 신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벤들라 김유영에게도 좋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일제 김지현의 슬픈 목소리도 잊혀지지 않고.

 

후기가 꽤 길어졌는데, 사실 지금 고생 꽤나 하고 있다. 내가 느낀 벅찬 감동은 저 위에 있는데 잘 표현이안 되서 상투적인 문장만 늘어놓은 거 같다. 이 시점에서 내가 무얼 더할 수 있겠는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서 직접 보길. 취향과 상관없이 이런 작품도 있다는 것만으로 괜찮은 시간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닌 존재들이 거치는 이 섬세한 시기를 우리는 '사춘기'라고 부른다.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09. 6. 20. 13:57
'예전만큼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으니 매번 오랜만의 공연나들이가 된다. 그리고 그만큼 작품 선택에 신중해지면서도 또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아서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이미 평단과 관객의 평이 드러나 있는 재공연들이 물망에 오른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작년 한 해동안 가장 잘 된 창작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미 칸의 여왕 자리를 차지한 바 있으니 전도연이란 배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으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영화고, 전도연에게는 단지 세번째 영화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전도연의 홍연은 대단한 것이여서 그 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다 휩쓸었지 아마. 전도연이 표현했던 그 천진했던 촌스런 시골소녀와 또 그만큼 순진해서 뭘 좀 몰랐던 초등학교 갓 부임한 선생님의 풋풋한 첫사랑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정다감하게 펼쳐졌다. 그 장르가 무엇이든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어떤 퍼포먼스에 대해 '다정다감하다'라는 표현이 맞나 싶지만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정말 그랬다. 따뜻하고 다정다감하게 예뻤다.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구수한 무대와 따뜻한 조명 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직함을 더하신 신뢰하는 김문정 음악감독의 밝은 음악도 한 몫 하였을게다.


맘마미아 초연 때 앙상블이었으나 앵콜 때 배해선이 빠진 소피역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정미는 그 동글동글한 얼굴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서 홍연이를 연기하기에 참 적역이었다. 초연에서 오만석과 조정석이라는 거물들을 내세웠던 강동수역을 이번 공연에서는 이지훈, 이창용, 성두섭이 연기하는 데 나는 이창용의 강동수를 만났다. 처음 보는 신인이었는데, 관객 입장에서 조금 서툰 신인이어서 선생질에 서툰 강동수가 더 리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음악이 참 좋았다. 아무래도 뮤지컬 음악은 단순히 음악감상용이 아니라서 단순히 음악 그 자체로 잘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대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평가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창작의 맹점들이 주로 음악에서 보여지는데, 내 마음의 풍금의 음악들은 그만하면 잘 된 듯 하다. 음악들이 꼭 멋있는 느낌이 나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지, 쉽고 가벼운 리듬을 사용했지만 '내 마음의 풍금'에는 그런 음악이 필요했던 것이니 그것을 잘 잡은 것에 점수를 주는 것이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맘에 드는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쓰는 이와 보는 이의 감성을 일기를 매개로 보여 준 기법이 좋았다. 여기에는 홍연이의 일기 뿐 아니라 강동수의 일기도 포함된다. 작품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실의 의상과 환상속에서 보여지는 의상이 구분이 되는데, 그 환상 속의 분홍빛 의상들이 참 예뻤다. 단순히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직물의 소재가 구름 위 폭신한 것을 딛는 느낌을 실어줬다고 해야 할까? 

결말은 원작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걸까? 원작 영화에서 영화를 어떻게 맺었었는지 가물한데, 기억하는 건 어쨋든 마지막에 강동수와 홍연의 결혼사진을 보여줬던 거 같다. 무대에서는 일단 강동수가 홍연을 두고 떠나는 것으로 끝을 낸다. 그런데 커튼콜까지 모두 끝난 후 두 주인공이 뽀뽀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그 자세로 사진에 담기듯 사각틀이 두 사람을 담는다. 이 마지막 장면이 참 예쁘더라.

누가 노래를 참 잘하더라. 음악이 너무 멋있더라. 어떤 장면에서 춤이 최고였다.보다 이 작품은 서두에서도 말했듯 참 다정다감, 따뜻했다. 그 좋은 느낌으로 기억될 작품이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