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마음이라 그랬는지 자는 동안 뒤척거리기도 여러 번, 결국 다른 날보다 일찍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동행해 주셨듯이 끝까지 임마누엘Immanuel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을 기도하는 것으로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남은 일정은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1592,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Elizabeth I가 설립한 아일랜드의 가장 오래된 공립 대학이다. 성공회 자녀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시작했고 1873년부터 모든 종교에 입학이 허용되었다. 대학은 가장 열정적인 세대가 지식을 탐구하는 곳이기에 기회가 닿으면 방문하는 편이다. 게다가 트리니티 칼리지는 역사가 깊고 아일랜드 유명 인사들을 배출한 명문이라 워낙 명성이 높다. 캠퍼스는 위엄이 있다. 고대 성을 연상시키는 회색벽돌 건물이 두르고 아스팔트가 아닌 돌로 바닥을 포장한 광장은 거기 서 있으려면 진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의 정점은 길이가 65m에 이르는 롱룸Long Room이 있는 도서관The Old Library이다. 유명한 고서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서 현재 일반 열람실은 아니고 박물관으로서 입장료를 받고 개방 중이다. 롱룸은 정말 웅장했다. 반원으로 된 천장과 구역을 나누는 기둥들은 고상했고 서가에 꽂힌 책들은 기품이 있었다. 통로에 놓인 대리석 흉상들은 서가에 엄숙함을 더했다. 사람 손보다 큰 육중한 열쇠를 관리하는 수도사는 뭔가를 숨기고 있고 호기심이 강한 이방인은 금기를 깨고 몰래 서가에 침입한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꽂힌 한 권의 책이 시선을 잡고 결국 사다리를 가지고 와 책을 꺼내 펼치는 순간 죽거나 마법이 시작되거나의 이야기가 담길 딱 그런 곳이다. 실제 영화 [해리포터Harry Potter]의 촬영지라고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일부 의미가 있는 책들을 통로에 전시했는데 2004년 발간된 [해리포터]가 함께 있어 웃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의 책은 켈스의 서The Book of Kells. 아이오나Iona의 수도사들에 의해 9세기 초에 만들어진 후 미스 카운티county Meath에 있는 켈스Kells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고 본다. 이후 1653년 더블린으로 보내졌고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보관 중이다. 켈스의 서는 라틴어로 기록된 사복음서의 필사본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세 원고로 기독교 국가에서 문화재로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크리스천Christian으로서 이런 보물을 직접 본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시간이 조금 남아 메리언 스퀘어Merrion Square를 찾았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원이다. 나무숲과 넓은 잔디 사이로 산책로를 냈고 중간중간 기념비나 조각상 등이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와상이다. 바위 위에 비스듬히 누워 공원 맞은편에 있는 그의 생가를 거만하게 바라보고 있다. 오스카의 상은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 별 감흥이 없었는데 양쪽의 아내와 동성애인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눈이 갔다. 오스카가 남긴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Life is not complex,

We are complex, Life is simple, and the simple thing is the right thing.’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파견 중이었고, 그것은 파견 부서에서는 이방인을, 원 부서에서는 자리를 지키지 않은 자를 의미했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없었지만 회사 생활이 막연하게 불안했다. 그 가운데 떠나온 여행이다. 뜻밖의 좋은 만남으로 시작해서 도시 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위로를 주고 끝에는 단순이란 단어를 내게 선물했다. 고맙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짐을 찾으면서 호텔 관리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일랜드에 와서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만들었어, 너네 나라 너무 좋아!”

진심이었다. 누군가가 여행에 관해 물으면 딱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확신에 차서 말할 수는 있다. 이 여행,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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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수도인 더블린을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 [원스] 덕분에 더 관심을 받게 됐다. 마침 묵고 있는 호텔 맞은편이라 두 주인공이 함께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를 불렀던 월튼Waltons 악기점도 잠깐 들렀었지만 [원스]를 상기하기는 역시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가 제격이다. 남주인공이 버스킹을 하고 여주인공이 꽃을 팔던 그 거리다. 남주인공은 별난 곳에서 버스킹을 한 게 아니어서 정말 다채로운 버스커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경우는 너무 평범할 정도여서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눈길도 가지 않는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구경했던 이는 꾸부정한 자세로 샌드아트Sand Art를 하던 사람이다. 샌드아트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길바닥에 모래 뿌려 놓고 휘젓는 모습이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는 행색인데 뚝딱 그림이 완성되니 정말 마법 같았다. 색소폰으로 연주되는 렛잇고Let it go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꼬마도 한참을 흐뭇하게 봤다. 아이들의 그런 자유로움은 늘 부럽다. 그래프턴 스트리트 끝에는 세인트 스티븐 그린공원St. Stephen’s Green이 있다. 영화 속에서 동전이 담긴 기타케이스를 도둑맞던 곳이다. 넓은 잔디와 호수가 있는 작지 않은 공원이라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기에 좋아 보인다. 다만 새가 너무 많다. 새를 너무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단점이다. 리피강Liffey River에도 새가 너무 많아 도망치듯 지났었는데, 여기도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은 템플바Temple Bar. pub과 식당, 갤러리gallery와 극장, 상점, 등이 모여 있는 곳으로 1960년 무렵부터 소매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정착함으로써 문화와 유흥을 겸한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놓쳐서는 안되기도 하고 마지막 밤에 잘 어울리기도 할 것이다. 거리는 예상보다 더 활기가 넘쳤다. 간판을 꾸민 전구들은 화려하게 빛나고 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흥을 돋우었다. 예쁜 소품 가게들도 많아서 쇼윈도를 한참 구경하다 한두 곳은 결국 문을 열기도 했다. 템블바의 랜드마크는 더템블바The Temple Bar 펍이다. 구글Google에서 더블린을 검색하면 리피강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그 빨간 집이다. 기념이 될 만한 곳이니 웬만하면 비집고 들어가겠는데 지나치게 사람이 많았다. 분위기만 살짝 맛보고 거리로 나와 다른 펍들을 기웃대니 열기가 뒤지지 않는다. 라이브live 공연 중인 한 곳을 골라 기네스 한 잔을 주문했다. 사람들은 자리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선 채로 각자 알아서 마시고 알아서 즐겼고 그래서 나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다. 식사는 곽민지 씨가 에세이 [원스 인 더블린]에서 소개한 엘리펀드앤캐슬Elephant & Castle에서 했다. 소문난 집인지 1시간여 기다린 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곽민지 씨가 추천한 치킨 요리Spicy chicken wing in basket는 양념을 어떻게 썼는지 독특한 매콤함이 있었다. 두세 조각 먹었을 때부터는 입안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끊을 수 없어 다음 조각을 들게 하는 맛이었다. 바구니가 작지 않았는데 결국 한 조각도 남김 없이 다 먹었다. 아일랜드는 음식이 유명한 나라는 아닌데 의외로 이번 여행은 너무 잘 먹는다. 소개를 받은 곳도 있고 무턱으로 가기도 했다. 인터넷에 여러 번 언급됐으나 오히려 똑같기 싫어 다른 곳을 찾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모양으로 맛있는 식사들을 했다. 아일랜드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색은 아니었지만 먹는 이가 맛있게 즐긴다면 굳이 지역에 강박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내내 피시앤칩스를 먹는 것보다는 당연히 훨씬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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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 머무는 중 온전한 하루가 주어진 유일한 날, 여유를 핑계 삼아 호스Howth에 갔다. 가볍게 걷기 좋은 작은 항구 마을이라고 지인이 추천했던 곳이다.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교외로 향하면서 보여주는 창 밖 풍경의 흐름은 정화다. 돈 냄새가 가득해 정신 못 차리다 나도 모르는 새 산소 흡입을 하고 있다. 한결 야트막해진 집들과 넓지 않지만 한적해서 오히려 갑갑하지 않은 길은 상투적이지만 정말 평화롭다. 호스가 종착지인 버스이나 정말 종점까지 가야 하는지 어쩔지 몰라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마을 깊숙한 데까지 왔다 싶어 내렸는데, 내 뒤로 내리려는 외국 소녀 셋을 기사가 불러 세웠다. 아마도 산책로에 대한 팁을 주는 듯 했다. 내리려다 말아 버린 그녀들을 쫓아 나도 후다닥 다시 올라 탔다. 기사는 한 두 정거장을 더 간 후에 우리를 내려 주면서 왼편 언덕을 가리켰는데, 언덕 끝은 바다가 바로 옆에 닿아 있는 산책로의 초입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바닷바람이 무시할 게 못되어 우산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겠다고 폼을 잡는데 날씨가 이도 영 도와주지를 않았다. 걸으라는 길이고 걷자고 왔으니 사진도 날씨도 개의치 말자 다짐했다. 우산을 접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음을 내디디었다. 그러니 눈이 열심히 풍경을 담는다. 바다뿐 아니라 반대편의 꽃밭도 보인다. 두어 사람만 나란할 수 있는 길을 사이에 두고 푸른 바다와 노란 꽃밭이라니, 흔하게 보던 해안 경치가 아니어서 적잖이 감동이었다. 흙을 밟고 바다 내음을 맡고 들꽃을 본다. 흐뭇하다. 얼굴을 때리는 비도 싫지 않으니 마음이 즐거운 것이 분명하다. 쭉 이런 길이여도 나쁘지 않은데, 어느 지점에선가 끝이 나고 자연스럽게 마을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마을은 버스에서 지나치며 흘깃댔을 때도 아기자기하다 느꼈는데 천천히 살피니 더 오밀조밀하다. 규칙적으로 세워진 듯 하면서도 외벽 색을 달리한 집들이 조화롭다. 창에 화분을 두어 장식한 것은 새롭지 않았는데, 외벽 넓은 공간에 모형 곤충을 한 마리 부착한 집이 여럿 있어 특이했다. 모형을 두면 진짜 곤충은 집에 끼지 않는다거나 하는 미신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확인하진 못했다. 다만 그 모양이 너무 예뻐서 열심히 카메라 줌을 당겼다.

 

선착장이 보이는 큰길까지 왔을 때 우연히 한 이정표를 봤다. ‘빈티지 라디오 박물관Vintage Radio Museum이라고 쓰였다. 나는 외국어 울렁증도 있으면서 외국 여행 중 고서점을 만나면 일단 들어간다. 오래된 것에 반응한단 얘기다. 그런데 이정표가 가리킨 방향으로는 딱히 길이 보이지 않아 우선 관광 안내소를 찾아 물었더니 친절히 위치를 표시해서 지도를 건네주었다. 집과 집 사이, 무심히 지나치면 놓치고 말았을 곳에 골목이 있었다. 쭉 따라가니 그 끝에 덩그러니 원형 탑이 하나 있다. 1805년 나폴레옹Napoleon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항구가 보이는 곳에 세운 마텔로타워Martello Tower인데, 현재는 라디오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입구와 연결된 사다리를 오르는데, 탑 옆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에서 연세가 있어 뵈는 아저씨가 내리더니 나를 따라 온다. 관리인이라고 해서 성급히 입장료를 꺼내려는데 돈은 받지 않고 그저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문이 열렸다. “우와!” 입 밖으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박물관이란 단어는 아무래도 격식을 갖춘 전시의 인상을 담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 보물창고에 가깝다. 밖에서 보기에 탑은 그리 크지 않아서 볼거리가 얼마 될까 했는데, 두 층으로 된 내부는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만 제외하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많은 종류의 통신 기기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 지 모르게 양은 어마어마했고 유리관 안에 조명까지 장착되어 진열된 여느 박물관의 어떤 물건보다도 흥미로웠다. 관리인 아저씨는 중간중간 기기의 역사, 의미, 등을 설명해 주는 것은 물론, 어떤 기기는 직접 작동해 보였다. 과연 소리가 날까 싶을 만큼 낡은 것들은 오히려 내가 직접 시동하게 해 의심을 잠재웠다.

혹시 당신이 직접 모은 것인가요?”

누군가의 다락방을 훔쳐보듯 재미있는 구경을 마쳤을 때 그에게 물었다. 이 멋진 보물의 주인은 팻 허버트Pat Herbert라는 수집가라고 한다. 그의 직업은 건설 감독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역 라디오 방송에 매료되어 라디오를 모았고 지금도 여전히 수집 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그는 미쳤어! He is crazy!

아저씨의 농담에 함께 웃으면서 생각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 분명히 5유로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관리인은 끝까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팻은 라디오에 미쳤지, 돈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관리인 직무유기가 걱정되었으나 실랑이를 계속할 수 없어 방명록에 감사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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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 음료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맥주 취향도 부드러운 스타우트stout 쪽이다. 대표 흑맥주 기네스Guinness는 더블린이 고향이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에서 제조 과정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내릴 곳을 정확히 몰라 두 정거장 지나친 탓에 찾는데 한참 헤맸다. 다행이 규모가 상당하고 내용도 충실해서 어렵게 온 보람은 있었다. 제조 과정뿐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기네스를 깊게 보여줬다. 투어 사이사이 시음한 맥주들은 하나같이 맛났다. 마지막 순서에서 기네스를 케그Keg에서 따르는 법을 배우고 각자 실습을 통해 본인의 기네스 드래프트Draught 한 잔을 만든다. 잔의 기울기 조정을 잘 해야 트레이드 마크인 초콜릿색 거품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할 수 있다. 플라스크와 시험관을 가지고 지지고 볶던 시절이 도움이 되었는지 성공적이었다. 각자의 기네스를 마실 곳은 맨 위층의 전망대다. 트인 조망을 위해 사방이 통유리다. 나무랄 데 없는 비주얼과 맛을 즐기기에 완벽한 장소다.

 

저녁식사는 브래즌 헤드The Brazen Head에서 했다. 1198년에 문을 연,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펍이란다. 오래된 것들은 세월의 흔적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게 무엇이든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기대한 바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어수선하기만 했다. 인기 있는 펍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옛 정서가 느껴지지도 않는 애매한 시끌벅적이다. 감자 요리와 함께 기네스를 주문했다. 역사가 깊은 곳에서 그 지역의 대표를 찾는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 곳의 공기가 내는 맛을 바랐다. 그런데 나온 기네스를 보자마자 마음이 상했다. 방금 다녀온 박물관에서 배우기를 기네스를 따르는 첫 단계는 지문이 없는 깨끗한 잔을 준비하는 것인데 얼룩이 있었다. 분위기에 취하길 바랐건만 오히려 망친 기분이 식사가 맛이 있는지 가늠도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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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와 마찬가지로 골웨이를 떠나 더블린을 향하는 길은 계속 초록이다. 한번 경험해서 놀랍지는 않아도 좋은 것은 또 봐도 좋아서 음악을 들으며 풍경만 보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더블린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 20분쯤, 너무 일러 짐만 먼저 맡기려 했는데 바로 체크인이 되었다. 내 방은 건물의 맨 꼭대기였다. 3층의 높지 않은 건물이라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꽤 힘든 수고 후에 만날 수 있었다. 지붕의 기울기가 그대로 전사된 비스듬한 천장 아래 작은 싱글 침대와 옷장, 테이블이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었다. 좁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느낌이겠지만 아늑하다고 여기면 혼자 지내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긴 왔는데 사실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체크인을 할 때 프런트에서 소개 받은 몇 곳을 머리에 넣고 일단 길을 나섰다. 호텔이 있는 골목은 대로는 아니지만 나름 크고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그 중 나무 상자를 그대로 덧댄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오게 디자인한 간판이 눈에 뜨였는데 바비큐 식당, 피트브로Pitt Bro’s BBQ이다. 점심 시간 버거 세트가 단 10유로라는 보조 입간판까지 놓치지 않은 덕에 더블린에서의 첫 맛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맛은 정말 제대로였다. 버거의 맛은 패티가 좌우하는 법인데 훈제 바비큐 식당이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런치 세트는 사이드와 음료 외에 특이하게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포함이었는데 버거의 느끼할 수 있는 끝에 차가운 부드러움이라니, 이 조합 추천이다.

 

더블린 성Dublin Castle은 어릴 적 상상 속에서 멋진 기사를 그렸던 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새로움은 아니었지만 회색벽돌이 켜켜이 쌓인 모양은 익숙해도 여전한 고풍스러움이었다. 지금 성의 자리는 930년대 덴마크계 바이킹이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요새와 옹벽을 세웠던 곳이었지만 지금의 성은 13세기 잉글랜드 존 왕이 처음 건설했고 이후 수세기에 걸쳐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1922년 아일랜드가 독립전쟁의 성과로 자유국의 위치를 얻을 때까지 아일랜드 내 영국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고 현재는 주요 국가 행사에 이용된다고 한다. 내부는 정해 준 시간에 맞춰 입장하게 해서 혼잡하지 않았다. 내부는 성보다는 궁전같았는데 카펫과 상들리에가 여느 유명한 궁전의 것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서 특별한 감탄이 되지도 않았다.

 

여전히 꿈에 지나지 않지만 쓰기에 집착하는 내게 더블린 작가박물관Dublin Writers Museum은 당연히 방문해야 할 곳이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작가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고 그들이 남긴 책, 편지, 소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더블린 사람들]을 손에 들고 비행기에 오르긴 했었으나 전시된 작가들 대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깊은 관람은 되지 못해 반성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을 벌써 넷이나 배출한 나라다운 자부심은 충분히 느껴졌다. 영화 [원스Once]의 영향으로 더블린을 음악과 연결시켰었는데 이 곳은 문학의 도시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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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오후 3시에 끝났다. 돌아가는 페리 탑승 시간은 5, 시간이 남는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며 관광안내지도를 살펴봤다. 한 곳이 눈에 뜨였다. ‘블랙포트The Black Fort’, ‘검은 요새라는 지명이 맘에 들었다.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거리를 물었더니 도보로 편도 40여분, 빠듯할 듯 하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너무 늦어지면 중도에 되돌아오지 싶어 걸음을 나섰다. 사람이 다니는 길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그나마 아무렇게나 쪼개어 만든 것처럼 보였어도 방향 표지판이 간간이 있어 안심이 되었다. 외로운 걸음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였고 어쩌면 확인하지 못하고 뒤돌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걷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한 차례 하는 것이 도움이 되듯, ‘지금 내가 걷는다가 좋았다. 슬슬 돌아설 타이밍이 신경 쓰이려는데 반대편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물어볼 참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다고 먼저 말을 건네 왔다. 5분쯤, 정말 조금 더 힘을 내어 마지막 돌계단을 올랐을 때, 내게 보여지는 장면에 나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앞에는 망망한 바다가, 뒤로는 광활한 평원이 같은 눈높이에 담기는 평평한 돌밭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니 해안절벽은 아주 높지 않지만 땅끝 생김새는 요새다운 위세가 충분했다. 지대가 꽤 넓어 인위로 방어벽 한둘 세웠을 수도 있는데 그런 흔적은 전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방으로 이렇게 단 하나의 걸림도 없이 트인 풍경을 만나는 일이 흔할까. 그리고 그 곳에는 나를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 했고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내 것 같았다. 둔앵거스에서 실망한 후 모허 절벽을 택했어야 했나 후회가 들었는데, 블랙포트에서 모든 후회는 저 멀리 날아갔다. 만약 모허 절벽을 갔다면, 아마 거기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감동했겠지만, 나 혼자만의 지금, 여기를 갖진 못했을 것이다.

 

저녁 식사는 키르완 레인Kirwan’s Lane에서 했다. 호텔 프런트에서 추천해 준 식당 중 가장 번잡하지 않아 보여 선택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꽤 고급스럽다. 가장 먼저 내민 메뉴판은 와인 리스트, 생각지 않았었지만 본 김에 기분내지 싶어 레드 와인 한잔을 먼저 주문하고 식사는 종업원이 권하는 것을 따랐다. 메인은 그날의 스페셜 요리로 가자미 구이였는데 살이 정말 부드러웠다. 조금 짠 듯 했지만 사이드로 나온 감자가 중화시켜 주었다. 정말 맛있었던 것은 전채 요리로 나온 홍합찜이었다. 작은 냄비를 홍합으로 가득 채우고 자작하게 끓였는데 바닷바람을 실컷 맞은 후라 그랬는지 뜨끈한 바다의 맛이 일품이었다. 전식으로 스프와 빵까지 제공되어 양이 적지 않았는데 섬에서 점심이 부실해서 허기져 있었기에 어느 하나 남기지도 않고 다 먹었다. 제대로 갖춰 풀코스를 먹은 셈이라 한국 돈으로 7만원 정도 나왔지만 너무 만족스러워서 전혀 아깝지도 않았다. 예산을 훌쩍 넘겼으나, 이 만찬은 오늘, 91, 입사 7주년 기념이라 하겠다. 이 정도의 호사는 충분히 누려도 될 만큼 그간 애쓴 스스로를 위로하고 축하한 저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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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도착한 손님이 있었는지 시끄러운 소리에 한 번 깨긴 했지만 비교적 잘 잤다. 오늘은 91, 한국에서는 특별새벽집회가 시작됐다. 같은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릴 순 없지만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이 곳에서 다시보기를 이용하여 혼자 새벽예배를 하기로 한다. ‘하나님, 오늘도 저와 동행해 주세요.’ 호텔 조식은 아이리쉬 브랙퍼스트Irish Breakfast를 기본으로 주고 빵과 음료, 요구르트, 시리얼, 등이 제공되었다. 베이컨이 너무 짰던 것만 빼면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특히 커피를 충분히 줘서 너무 좋았다.

 

여행자들에게 골웨이는 모허 절벽Cliff of Moher과 애런 제도Aran Islands를 가기 위한 기점으로서 기능한다. 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에 나왔고 그렇지 않았어도 아일랜드 제일의 관광지로 모허 절벽이 훨씬 더 유명하지만 나는 애런 제도를 선택했다. 당시에는 모허 절벽이 반드시의 수식어가 붙는 곳인지를 몰랐고, 정말 공부를 너무 안 했다, 절벽과 섬 중 섬을 택한 단순한 결정이었다. 두 곳 모두 개인이 혼자 가기는 어렵고 일일 투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시내에서 전날 미리 구입해 뒀다.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가 묵고 있는 호텔 바로 앞이어서 부담이 없었는데 웬걸, 나가 보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2층짜리 버스를 가득 채우고 한 대가 먼저 출발했다.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차, 바람막이 점퍼를 침대에 꺼내 두고는 챙겨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티켓에 적힌 출발 시간까지는 15분이 남은 상황, 입고 있었던 면 후드집업으로 견딜 것인가, 아니면 호텔에 돌아갔다 올 것인가, 워낙 기다리는 줄이 길어 1분 정도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 옷차림을 보니 완전히 겨울이었다. 시내 날씨도 꽤 쌀쌀한 편인데 바닷바람을 바로 맞아야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 더는 주저할 수 없었다. 호텔이 코앞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후다닥 뛰었다. 이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둔앵거스Dun Aonghasa를 다녀올 때 만난 비바람은 우산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점퍼가 없었다면 면 옷은 흠뻑 젖었을 것이다. 그 점퍼는 한국에서 짐을 꾸릴 때도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페리 선착장까지 버스는 해안 도로를 달렸다. 더블린에서 골웨이로 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파랑의 연속이었다. 날씨는 맑음, 대서양은 그 이름답게 아주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된다. 고마운 하늘과 바다다.

 

애런 제도는 이니쉬모어Inishmore, Irish: Inis Mór, 이니쉬만Inishmaan Irish: Inis Meáin, 이니쉬어Inisheer, Irish: Inis Oírr의 나란한 3개의 섬을 일컫고, 섬을 뜻하는 inis에 각각 Mór’, ‘중간Meáin’, 동쪽Oírr’이라는 의미가 붙은 것이다. 이 중 페리가 나를 데려다준 곳은 이니쉬모어 섬이다. 내가 구매한 투어 상품은 섬까지의 왕복 교통편과 함께 섬 내에서의 자전거 대여, 또는 버스 투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주차된 여러 투어 버스 중 하나에 올랐다. 섬은 대단한 절경은 아니지만 거친 자연은 적나라했다. 애런 제도는 한때 유럽을 지배했지만 BC 1세기에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고, 이후 여러 나라의 공격으로 점점 더 서쪽으로 밀려난 켈트족의 마지막 보루가 된 곳이라 한다. 영국의 침략 당시, 계속 밀어붙이던 영국군은 이 섬의 척박함을 보고 돌아섰다 하는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담이 많아 그런지 여러 해 전 빗속에 걸었던 제주도 올레길이 떠올랐는데 여기가 좀 더 거칠다. 가이드는 종종 차를 세우고 멈춘 곳의 자연적 특징 등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백 퍼센트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영어 실력이 한스러울 뿐, 도통 준비랄 것을 않은 셈 치고는 이 날의 일정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문제는 투어 중간쯤 발생했다. 둔앵거스 관광을 위한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데,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가이드에게 돈을 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탄 버스는 내가 구매한 투어에 속한 게 아닌, 섬 투어만 하는 개인 차량이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이라 실랑이를 끌어야 본전도 안 되고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사정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간절함은 통하나 보다.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 동양인 여자가 딱해 보였는지, “킵 고잉Keep going”, , 고맙습니다. 가이드는 그 날 투어에 끝까지 나를 끼워 주고 섬을 떠날 때 부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에도 먼저 손 흔들며 인사를 건네어 왔다. 정말 좋은 아저씨를 만났다.

 

둔앵거스는 애런 제도의 선사 시대 요새 중 가장 유명한데, 대서양과 바로 만나는 가장자리 절벽은 약 100 미터로 섬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내려다보면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까지 거세어 정말 아찔하다. 살면서 봐 온 대개의 바다는 그 끝이 파도가 밀려오는 면이라 경계가 모호했는데, 가파른 절벽이 만드는 해안선은 바다와 육지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하여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절벽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끝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슬아슬한 자세들을 취했는데, 나에게는 그만큼의 욕심이 나는 장관은 아니었다.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고 오르는 길이 꽤 험하고 긴데, 그 과정을 보상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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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웨이를 먼저 보고 더블린으로 되돌아오는 일정이었기에 더블린 공항에 내리자마자 골웨이행 버스를 탔다. 동에서 서로 아일랜드 내륙을 달리는 길은 끝없는 초록이었다.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지나면 평원이 나타나고, 숲도 평원도 아니면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이었다. 이 나라를 잘 모르지만 아일랜드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 이랬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면 내 마음이 잠시라도 평안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 마음이 넓어진다. 일과 관계에서 꼬여 있는 문제들도 어쩌면 그 시작을 찾아 조금씩 풀 수 있을 것도 같다. 앞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없을지라도 지금 이 풍경이 준 위로를 해치지 않는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까지 마치니 오후 2시쯤 되었다. 요기를 위해 많은 이들이 언급했던 맥도나흐Mc Donagh’s를 먼저 찾았다. 1902년에 영업을 시작한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 전통 맛집이라고 한다. 대구튀김은 갓 튀겼는지 아직 온기가 남았는데 속살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했다. 감자튀김은 그냥 무난한 정도.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중아와 국이 서로 티격태격하던 게 생각나 혼자 웃었다.

너네 음식은 김치가 다잖아!”

너네 음식은 감자가 다잖아!”

얼마나 특색 있는 음식이 없으면 피시앤칩스가 대표 음식일까, 정말 감자가 다인가 보다.

 

골웨이는 아일랜드 제3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구역 상 구 정도의 크기로 시내 구경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중심가는 작은 골목들이 꽤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크지 않은 규모의 상점, 식당들의 아기자기한 장식이 어우러져 하나같이 예뻤다. 아일랜드 전통 보석, 클라다 링Claddagh Ring 매장도 여럿 있었다. 클라다 문양의 두손은 당신에게 바치는 우정, 왕관은 당신에게 바치는 충성, 하트는 당신에게 바치는 마음을 뜻해서 약혼의 증표가 된다고 한다. 의미를 생각하면 달리 보이긴 하지만 세 문양의 조합이 어쩐지 투박해 보여 눈요기로만 즐겼다. 번화가를 빠져 나오니 코리브 강River Corrib이 보인다. 강이라고 하기엔 폭도 좁고 길이도 유럽에서 가장 짧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서 작고 예쁜 도시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로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었다. 주변 주택들은 키가 작아 아담한데 색이 알록달록하여 지루하지 않았다. 산책로가 끝나는 샐먼위어브리지Salmon Weir Bridge까지 오면 골웨이 대성당Galway Cathedral을 만날 수 있다.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회색 돌벽이 주는 느낌이 엄숙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태도가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내부는 유럽 여느 대성당 못지않게 화려했는데, 특히 제대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꽃잎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뜨였다. 게다가 마침 건축된 지 50주년을 맞아 사진을 전시 중이어서 성당 역사도 잠깐 훑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만족스런 관람이었다.

 

첫날이라지만 여정이 이렇게나 순조로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 좋은데, 딱 하나, 날씨가 변덕이다. 약간 쌀쌀하다 싶은 정도로 다니기에 나쁘지는 않은데, 맑은 하늘이었다가 뜬금없이 비가 오기를 벌써 세 번째다.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낯선 곳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며 따뜻한 커피 한잔, 꽤 낭만적이다. 딱 한 가지 아쉽다면 이 집 카푸치노가 심하게 달다. 그러나 그쯤이야, 나는 여행자로서 이미 충분히 너그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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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동으로 가는 셔틀트레인에서 우연히 이정은 배우를 만났다. 보통은 연예인을 봐도 알은체하지 않는데 그녀는 너무 연예인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어 오히려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서빙고역을 맡았던 그녀는 드라마가 잘 된 덕에 포상휴가를 가는 길이라 했다. 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라 작품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즐거운 대화가 꽤 오래 이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를 한 번 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문자메시지, ‘우연한 만남 많이 하시고……’,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인데 기대되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언젠가의 식사는 성사가 쉽지 않겠지만 출발선을 잘 끊어 좋은 만남이 계속 이어졌었다는 후기를 나눌 날을 바라 본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이라 맨 뒤라도 복도 쪽 자리인 것에 안심을 했는데 옆자리 분이 가족이 떨어져 앉게 됐다며 바꿔 주길 청했다. 옮긴 자리는 창가 쪽이라 이동이 불편한 것은 예상이 됐는데 실제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주변 좌석들은 모 종교모임의 단체여행 팀이었는데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시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수시로 울어대는 아기를 귀여워하고 일흔 할머니의 재혼 이력을 감탄하기가 강요되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피난처는 자는 것 밖에 없을 듯 하여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 한 두 번 깨긴 했지만 다행히도 많이 설치지는 않았다. 옆자리 할머니는 헤어질 때에도 넘치는 친근함을 잃지 않았다. 나도 빌어 주시는 축복에 감사를 담아 인사했다. 답례에 담긴 미소가 아무렴 백 퍼센트일 수는 없었지만 이 또한 귀한 만남일 것이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여 일찍 이스탄불Istanbul에 도착했다. 경유지 체류 시간이 길지 않아 걱정했었는데 도리어 생각지 못했던 여유가 생겼다. 면세점 내 카페에 탑승 안내 모니터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진한 커피에 피로가 조금 달래지는 것 같다. 챙겨 온 론리플래닛 사본을 그제서야 좀 훑어볼까 싶어 폼을 잡는데, 한 중년 여성이 합석을 해도 되겠냐고 말을 걸어 왔다. 빈 자리를 찾다 혼자 있는 한국인이 눈에 뜨였던 모양이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다. 간단한 통성명을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스위스에서 경영학 석사MBA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마친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남편과 아들은 직장에 매여 갈 수 없지만 개인 사업을 하는 자기는 자유롭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살아온 이력과 신앙을 포함한 삶의 철학을 지루하지 않게 나누셨다. 기독교인인 나도 때로 거부감을 느끼는 극성맞은 전도자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떻게 살길 바라실까’,

내게 꼭 필요한 질문과 함께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받은 귀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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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일랜드Ireland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아일랜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시작은 충동에 가깝다. 웹서핑 중 클릭 몇 번으로 항공권을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짜가 9월특별새벽집회와 정확히 겹쳤다. 나홀로 해외여행으로 휴가를 보낼 예정이라는 말에 엄마는 별말씀 없으셨으나 왠지 굳은 표정을 본 것 같다. 게다가 그 해 여름 한국은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사태로 시끄러웠다. 아일랜드는 상관 없었으나 경유지 터키가 마음에 걸렸다. 뭔가 여행이 막힌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아 진지하게 항공권 취소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왕 사 놓은 건데 예정대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언니의 말에 용기를 내어 최종 결정을 내린 때는 출발을 겨우 한 달 앞두고서였다. 급하게 호텔을 잡고는 또 시간만 흘렀다. 타 부서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때라 일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으나 그만큼 다른 것들로 시간표를 꽉 채우던 시기이긴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여행에 집중을 못했다는 게 사실은 더 맞다. 결국 준비라고 한 것은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의 아일랜드 더블린Dublin과 골웨이Galway 부분, 두 쪽 남짓을 복사한 것이 전부인 상태로 출발을 감행했다.

 

공항이다. 7년 전, 입사를 앞두고 갔던 유럽배낭여행 이후 다시 혼자 떠난다. 그 때는 떠나기도 전에 이미 수첩의 삼분의 일은 빼곡했었는데, 지금은 항공권과 숙박권 외 빈 손이다. 조금 두렵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불안은 준비를 많이 못해서라기보다 열리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듯 하다. ‘내 분명 신호를 주었건만 억지를 부렸으니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이 마땅할 것이야라고 신의 음성을 들은 같달까? 억지의 근거를 찾아야겠다. 꼬박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날아 나는 왜 아일랜드에 가려 했을까. 오래 전 장유정 연출의 기사를 다시 찾아 읽었다. 그녀의 아일랜드 여행기를 담은 짧은 글로 당시 내가 정기 구독하던 잡지에 실렸었다. ‘아일랜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기사는 특별히 아일랜드이기 때문인 것은 없었다. 그녀가 여행은 마음의 문제이고, 어쩌면 일상도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은 곳이 아일랜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여행의 이유로서 충분하였다. 하다 못해 그녀의 여행지는 내가 갈 곳과 전혀 겹치지 않음에도 아일랜드라는 네 글자가 주는 힘에 기대가 생겼다. 설렘이 조금씩 제 영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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