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 도착한 손님이 있었는지 시끄러운 소리에 한 번 깨긴 했지만 비교적 잘 잤다. 오늘은 91, 한국에서는 특별새벽집회가 시작됐다. 같은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릴 순 없지만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이 곳에서 다시보기를 이용하여 혼자 새벽예배를 하기로 한다. ‘하나님, 오늘도 저와 동행해 주세요.’ 호텔 조식은 아이리쉬 브랙퍼스트Irish Breakfast를 기본으로 주고 빵과 음료, 요구르트, 시리얼, 등이 제공되었다. 베이컨이 너무 짰던 것만 빼면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특히 커피를 충분히 줘서 너무 좋았다.

 

여행자들에게 골웨이는 모허 절벽Cliff of Moher과 애런 제도Aran Islands를 가기 위한 기점으로서 기능한다. 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에 나왔고 그렇지 않았어도 아일랜드 제일의 관광지로 모허 절벽이 훨씬 더 유명하지만 나는 애런 제도를 선택했다. 당시에는 모허 절벽이 반드시의 수식어가 붙는 곳인지를 몰랐고, 정말 공부를 너무 안 했다, 절벽과 섬 중 섬을 택한 단순한 결정이었다. 두 곳 모두 개인이 혼자 가기는 어렵고 일일 투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시내에서 전날 미리 구입해 뒀다.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가 묵고 있는 호텔 바로 앞이어서 부담이 없었는데 웬걸, 나가 보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2층짜리 버스를 가득 채우고 한 대가 먼저 출발했다.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차, 바람막이 점퍼를 침대에 꺼내 두고는 챙겨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티켓에 적힌 출발 시간까지는 15분이 남은 상황, 입고 있었던 면 후드집업으로 견딜 것인가, 아니면 호텔에 돌아갔다 올 것인가, 워낙 기다리는 줄이 길어 1분 정도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 옷차림을 보니 완전히 겨울이었다. 시내 날씨도 꽤 쌀쌀한 편인데 바닷바람을 바로 맞아야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 더는 주저할 수 없었다. 호텔이 코앞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후다닥 뛰었다. 이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둔앵거스Dun Aonghasa를 다녀올 때 만난 비바람은 우산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점퍼가 없었다면 면 옷은 흠뻑 젖었을 것이다. 그 점퍼는 한국에서 짐을 꾸릴 때도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페리 선착장까지 버스는 해안 도로를 달렸다. 더블린에서 골웨이로 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파랑의 연속이었다. 날씨는 맑음, 대서양은 그 이름답게 아주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된다. 고마운 하늘과 바다다.

 

애런 제도는 이니쉬모어Inishmore, Irish: Inis Mór, 이니쉬만Inishmaan Irish: Inis Meáin, 이니쉬어Inisheer, Irish: Inis Oírr의 나란한 3개의 섬을 일컫고, 섬을 뜻하는 inis에 각각 Mór’, ‘중간Meáin’, 동쪽Oírr’이라는 의미가 붙은 것이다. 이 중 페리가 나를 데려다준 곳은 이니쉬모어 섬이다. 내가 구매한 투어 상품은 섬까지의 왕복 교통편과 함께 섬 내에서의 자전거 대여, 또는 버스 투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주차된 여러 투어 버스 중 하나에 올랐다. 섬은 대단한 절경은 아니지만 거친 자연은 적나라했다. 애런 제도는 한때 유럽을 지배했지만 BC 1세기에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고, 이후 여러 나라의 공격으로 점점 더 서쪽으로 밀려난 켈트족의 마지막 보루가 된 곳이라 한다. 영국의 침략 당시, 계속 밀어붙이던 영국군은 이 섬의 척박함을 보고 돌아섰다 하는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담이 많아 그런지 여러 해 전 빗속에 걸었던 제주도 올레길이 떠올랐는데 여기가 좀 더 거칠다. 가이드는 종종 차를 세우고 멈춘 곳의 자연적 특징 등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백 퍼센트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영어 실력이 한스러울 뿐, 도통 준비랄 것을 않은 셈 치고는 이 날의 일정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문제는 투어 중간쯤 발생했다. 둔앵거스 관광을 위한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데,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가이드에게 돈을 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탄 버스는 내가 구매한 투어에 속한 게 아닌, 섬 투어만 하는 개인 차량이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이라 실랑이를 끌어야 본전도 안 되고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사정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간절함은 통하나 보다.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 동양인 여자가 딱해 보였는지, “킵 고잉Keep going”, , 고맙습니다. 가이드는 그 날 투어에 끝까지 나를 끼워 주고 섬을 떠날 때 부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에도 먼저 손 흔들며 인사를 건네어 왔다. 정말 좋은 아저씨를 만났다.

 

둔앵거스는 애런 제도의 선사 시대 요새 중 가장 유명한데, 대서양과 바로 만나는 가장자리 절벽은 약 100 미터로 섬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내려다보면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까지 거세어 정말 아찔하다. 살면서 봐 온 대개의 바다는 그 끝이 파도가 밀려오는 면이라 경계가 모호했는데, 가파른 절벽이 만드는 해안선은 바다와 육지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하여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절벽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끝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슬아슬한 자세들을 취했는데, 나에게는 그만큼의 욕심이 나는 장관은 아니었다.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고 오르는 길이 꽤 험하고 긴데, 그 과정을 보상하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