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09. 8. 29. 17:51

아무래도 주류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에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뮤지컬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어떤 편견을 가지고 고르려 든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아직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벗어나 보지 못했다물론 대한민국 순수 창작을 제하고 하는 얘기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들어오는 작품마다 대박 행진이었던 프랑스 뮤지컬도 아쉽게도 아직이다서두에 이런 안타까운 고백을 하는 것은 그만큼 나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익숙하단 전제가 깔린다는 얘기다. 제목에서 읽히듯 '일 삐노끼오'는 영어권이 아니다. 이탈리아 뮤지컬이다. 누가 피노키오가 이탈리아 태생 아니랄까봐! ^^;;

자막을 봐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내한공연을 좀 꺼리는 편인데, 잘 알고 있는 피노키오가 소재인데다 이탈리아 뮤지컬의 내한공연은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힘들기에 선뜻 거금을 들였다. 이탈리아 작품이라고 해서 뮤지컬의 기본적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인 피노키오의 모험을 제대로 읽어 보았는가? 창피하지만 난 읽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작품인 줄 새삼 알았다. 공연 역시 그 긴 이야기를 기본적으로나마 모두 담아 내다 보니 2시간30분의 꽤 긴 작품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살짝 지루해지기도 하더라. 아무래도 내가 어른인 탓일까? -_-; 그렇지만 무대의 수준은 절대로 어리지 않았다. 어른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준을 보여 주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적인 에피소드들이 구현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피노키오의 진짜 나무 느낌이 나는 분장, 줄 달린 꼭두각시 인형들의 공연 장면, 의인화된 동물들의 분장, 그리고 파란 머리 달의 요정, 투르키나가 인생에 대해 노래할 때 거울을 통해 피노키오가 복제되는 장면까지. 아무래도 그런 환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다 보니 앙상블과 무대의 활용이 중요해 보였는데, 특별히 무대 활용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적절히 위치를 바꿔 줌으로서 안과 밖으로 동시에 활용한 제페토의 집과 장난감 나라로 가는 자동차는 멈춰 있고 무대배경을 움직여서 이동을 표현했던 아이디어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실용적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닷속. 바닷속 생물들의 움직임을 배경음악만 나오는 가운데 표현했는데, 좀 늘어지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느낌만은 확실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전구불빛으로 고래의 입이 형상화되고 피노키오는 자연스럽게 고래에게 잡아 먹히더만. ^^;;

무대미술과 연출적인 기법들은 사실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닐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 작품으로서 아무래도 다르다는 느낌은 음악과 색감에서였다. 듣기 나름이겠지만 이탈리아어는 확실히 영어보다는 뽀드득거린다. (이런 느낌에 대한 표현에 대한 표준어는 무엇인지? -_-a). 대형공연의 음악들이 그렇듯 이 작품의 음악들도 익숙한 멜로디에 적절한 높낮이로 관객의 감정선을 적절히 조율했는데, 다르게 들린 건 그 뽀드득거리는 언어들이 리듬감을 더한 탓이 아닐까? 그리고 그 비비드 컬러의 의상! 배우들의 움직임에 발랄함을 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어린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수준도 올렸을 테다. 어른인 나도 눈이 꽤나 즐거웠으니. 마지막으로 한국인 관객들을 배려한 깜짝 순간들이 몇 있었다. 나무인형이 완성된 순간에 인형이 살아서 처음 제페토에게 건네는 말을 “(한국어로) 아빠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공연 중 서너 번 간단한 대사를 한국어로 날려준 것.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이 되어 나타난 피노키오는 실제 한국인 꼬마 배우였다. 주인공 피노키오를 맡은 배우의 관객서비스가 특히 좋았는데, 공연이 끝난 후 싸인회(이 싸인회는 미리 선점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정말 체구가 작았는데, 새삼 남자로서 작은 체구가 저 사람의 성장기에 상처인 적은 없었을까?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해 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자막에 신경이 쓰여 무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으나 충분히 보는 즐거움이 있는 무대였다. 피날레를 할 때는 함께 박자를 맞출 수도 있을 만큼 마음에 즐거움이 남았던 공연이었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