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16. 2. 14. 21:54

작년 연말 웹드라마로 먼저 공개되고 MBC에서 2부작 단막극으로 방송했다. 그리고 꽤 인기를 끌었던 거 같다. 그 덕에 지난 설연휴에 MBC에서 재방까지 했다. 그러니 많이들 아는 작품이리라.

 

나는 화제가 되기 한참 전부터, 그러니까 이 작품의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기대를 품었었다. 내심 나만 아는 그런 보물같은 작품이길 바랐는데 너무 인기를 끌어 오히려 조금 섭섭하다.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에 기대를 품은 건 '극본,연출 김지현, 주연 김슬기'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전작 [원녀일기]를 봤다면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타임 슬립이 소재인데 수능날 비를 통해 조선에 떨어진 고3 수포자(수학 포기자) 단비, 김슬기역,과 조선 시대 왕 이도, 윤두준역,의 성장 로맨스를 다룬 판타지 사극이다. 타임 슬립을 다룬 작품은 그간 여럿 있었는데, 사실 나는 이 소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타임 슬립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언제나 100% 완벽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최근 드라마 [시그널]에서 나온 대사처럼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한다') 그러나, [퐁당퐁당LOVE]는 타임 슬립을 통해 다른 시대에 가게 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그저 웃음 코드로 단순 나열한 작품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가 웰메이드인 이유는 1. 명확한 주제의식, 2.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여 모든 에피소드들의 개연성 있는 연결, 3. 주연배우들의 호연과 케미를 들 수 있겠다.

 

김지현 연출은 모 인터뷰에서 '꿈꿔도 되는 시기에 학업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요즘 친구들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그 요즘 친구들 중 하나인 소녀, 단비이다. 현재에서는 쓸모 없게 태어난 자신을 탓하며 어디든 먼 곳으로 사라지고 싶어하는 고3 수포자이지만, 그녀는 구고현의 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 정도는 그냥 푸는 고3이기에 조선에서는 과학과 수학의 월등한 실력자로 쓸모가 있는 자가 된다. '쓸모'를 재정의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현재와 과거 사이 과학문명 수준차이에 빗대어 요즘 친구들을 단순하게 위로하고자 한 게 전부였다면 이 작품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친구들이 조선에 가서 살 순 없으니. 그러나 작품의 진짜 주제는 후반부에 이도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된다. "사람이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사람인데.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때문에 오늘을 버리고 도망하지 마라. 세상에서의 쓸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 대사는 단비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니었지만, 단비는 조선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해 현대를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작품은 타임 슬립이란 소재를 가지고 재미 뿐 아니라 참 위로를 건넨다.

 

김지현 연출은 전작 [원녀일기]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데려왔을 뿐 아니라, -콩쥐, 심청, 춘향이가 주인공이다.- 에피소드들도 개연성 있게 잘 버무려 놓아 그 필력과 연출력을 입증했었다. [퐁당퐁당LOVE]에서도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조선의 그 때로 온 이가 '단비'인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도는 세종대왕인 것으로 밝혀지는데 세종시대 역사적 사건들은 적재적소 풍성한 이야기거리로 잘 활용되었다. 장영실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조선으로 간 단비가 장영실이었다는 반전은 "역시 김지현연출!"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나는 무심하게 넘길 수도 있는 현대 단비의 일상들이 조선에서 절묘하게 활용되어 그 어떤 사소한 행동도 쓸데없는 건 아니라는 탁월한 메세지에 반했다.

 

마지막으로 김슬기, 윤두준 두 배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이 워낙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지만 그래도 두 배우의 호연이 없었으면 타임 슬립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슬기는 정말 요즘 아이의 모습 그 자체였고, 윤두준 역시 타 사극의 일반적인 왕과는 다른, 젊은 왕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요즘 말로 두 사람의 케미는 정말 최고였다. 누구는 김슬기를 두고 "귀신으로 살기엔 이쁜 처자"-김슬기는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이었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녀에겐 요즘 아이의 생동감이 있다. [식샤를 합시다]를 보면서 윤두준의 연기가 어색하진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는 일상 연기를 잘 하는거였나 보다. 곤룡포를 입고도 일상이 보였다. 나는 이 작품으로 본래도 좋았던 김슬기는 더 좋아졌고, 본래는 관심 밖이었던 윤두준에게는 두준두준하게 되었다.

 

난 단막극이 참 좋다. 장편에서는 다루기 힘든 참신한 소재와 방식 등이 시도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그런데, 경제적인 이유로 요즘 정말 만나기 어려워 아쉽다. [퐁당퐁당LOVE], 이 작품의 성공이 작은 계기가 되어 또 좋은 단막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면 좋겠다.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2. 7. 13. 22:27

 

2011.09.11 @Hierapolis Pamukkale, photo by Ant      

 

2011.09.11 @Hierapolis Pamukkale, photo by Prol                        

 

2011.09.11 @Hierapolis Pamukkale, photo by Prol

 

성스러운 도시

기원후 6세기에 지리학 사전을 편찬한 '비잔티온의 스테파노스 (Stephanus of Byzantium)'는 이 도시에 신전이 유난히 많아 '히에라폴리스', 즉 '성스러운 도시'라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페르가몬 왕가의 시조인 '텔레포스 (Telephos)'의 부인이었던 '히에로 (Hiero)', 또는 '히에라 (Hiera)'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中, 유재원 저-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2. 7. 8. 22:31

 

2011.09.11 @Hierapolis Pamukkale, photo by Prol                       

 

 

2011.09.13 @Efes, photo by Prol

 

 

2011.09.13 @Efes, photo by Prol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라운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 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아픔없는 꼬리 너무너무 좋을 테지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그 아픔 없는 눈 슬픔 없는 꼬리 너무너무 좋을 테지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고양이~~ 아~~ 야~옹!

 

- 시인과 촌장 <고양이>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2. 4. 21. 23:45

작년 여름, 한참 터키 여행을 준비하던 때에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에서 초연한 뮤지컬 '모비딕'을 보고 와서 '소리와 음악의 감동'이라는 짧은 감상을 남겼더랬다. 그리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올 봄, 뮤지컬 '모비딕'은 같은 곳의 연강홀로 무대를 좀더 넓혀 다시 배를 띄웠다. 이렇게나 가슴 뛰는 작품이 되어.

뮤지컬 '모비딕'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그 사례가 있었다고 하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된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므로. '액터-뮤지션'은 말 그대로 연기자와 음악인을 겸하는 아티스트를 말한다. 그렇다고 노래 부르는 아이돌이 나오는 뮤지컬을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란 작품 안에서 '액터-뮤지션'이 구현되는 것이다. 즉 연기자가 극 안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외국의 사례는 몇 번 글로 소개받았었으나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었다. 뮤지컬 '모비딕'은 나의 첫 액터-뮤지션 뮤지컬이었고, 뮤지션이 연기를 하기 위해, 연기자가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멜로디가 쪼개지고, 또 겹쳐지는 너무나 신선한 편곡의 묘미와 소리의 향연을 내게 선사했다. '소리와 음악의 감동', 한 구절로 표현된 초연 때의 내 감상이다.

뮤지컬 '모비딕'은 조용신 작, 연출가와 정예경 작곡가를 필두로 한 창작진이 '우리 새로운 거 한 번 해보자' 해서 1년여동안 워크숍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고집하기 위해서는 연주와 극 연기에서 아무렴 연주에 비중이 더 실렸을테고, 단계를 밟아 수정 보완해 왔다 하더라도 작품의 드라마까지 욕심내기엔 1년은 아무래도 부족했을 터였다. 초연의 아쉬움은 여기에서 나왔다. 사소한 효과음까지도연기자가 악기를 통해 직접 소리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기교의 연주는 그 자체로 연기가 되었지만, '모비딕'의 작품 철학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올해 다시 만난 무대는 줄거리가 있는 콘서트같단 느낌이 없지 않았던 초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비딕'의 원작소설을 모른다 할 지라도 충분히 극을 이해할 수 있게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냈다. '인간과 자연과 교감'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 의식에 가장 가까운 인물인 퀴케그의 캐릭터가 분명해 진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초연 때 배우가 흰색 자켓을 덧 입는 것이나, 지금 무대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나, 콘트라 베이스가 흰 고래 모비딕을 형상화하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다.

극의 이해를 돕는 것에 무대 또한 한 몫 했다. 공연을 보기 전 새로운 '모비딕' 무대에 대한 기사를 접해서 대략의 스케치까지 봤었음에도,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무대는 나로 탄성을 자아냈다. 바다에 침몰해 버린 난파선. 불안하고 위태롭고 위압적인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 택했다는 경사무대는 실제 배우들이 움직일 때마다 아슬아슬한 항해를, 모비딕과의 죽음을 건 사투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했다. 피아노의 위치가 초연 때 중앙에서 이번 공연에서 바깥쪽으로 옮겨진 것도 더 나아진 방향같다. 피아노를 담당하는 이스마엘에게 관찰자라는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부여했으므로.

악기를 연주할 줄 알면서 캐릭터에 부합하는 연기자를 찾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을터, (프로그램을 보니 같은 배역을 연기하지만 사용하는 악기가 다른 더블 캐스팅도 있는데다, 같은 악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뮤지션이 해오던 연주 방식이 달라 악보도 모두 달랐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뮤지션들에게 노래와 연기를 주문해 뮤지컬 무대에 세우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었겠는가. 당연히 그들의 연기는 베테랑 배우들에 훨씬 미치지 못하나, 그래도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건 초연 대비 일취월장한 연기를 보여주기까지의 그들의 노력과, 그들은 다른 배우들이 하지 못하는 연주의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 이스마엘 신지호, 당신의 피아노는 정말 최고! 퀴케그의 지현준은 연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나, 역시 KoN이 들려주는 소름끼치는 바이올린 퍼포먼스가 그리웠다. KoN 캐스팅으로 봤다면, 여전히 퀴케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을까? 그럴지도.-_-. 광기어린 중심인물 에이헙의 황건은 이 작품으로 인기가 치솟는듯 하니 더 말하지 않지요.

마지막으로 내가 최고로 반했던 연출을 꼽는다면, 도입부분 망자들의 등장 장면. 조명의 어우러짐은 정말 최고였답니다.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2. 1. 1. 19:36
2011.09.09 @Goreme Kappadokya, photo by Ant     


                                                                2011.09.09 @Goreme Kappadokya, photo by Prol  


새해다.
잘 살자, 쫌.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1. 12. 10. 22:47
2011.09.15 @Cukurcuma Cad. Istanbul, photo by a passerby


John, 그대 기억 속 Istanbul은 여전히 오점만점에 오점인지?


2011.09.15 @cable car for Pierre Loti Kahvesi Istanbul, photo by John


Snow and Na-ly

오늘 그녀들과 터키를 다시 기억했다. 여전히 설레고 한없이 그립다. 
터키도 여전하겠지,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를 방방 띄워놨던 그 에너지 그대로일꺼야.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1. 12. 10. 22:44
2011.09.11 @Pamukkale, photo by Prol                       


2011.09.11 @Pamukkale, photo by Prol


2011.09.11 @Pamukkale, photo by Prol


2011.09.11 @Pamukkale, photo by Prol                       


심장병, 고혈압, 피부병~~ ? 못 고칠 병이 없네~. 석회층 온천수~~!  ㅋㅋㅋ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1. 12. 4. 22:45
2011.09.11 @Pamukkale, photo by Prol


여행 중에는, 낯선 곳이 주는 흥분만으로 쉬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곤 한다. 그렇지만, 낯선 환경은 외로운 순간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오랜 지기만이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이 있기에, 그 날의 만남이 더욱 반가웠을 수밖에.

그녀, 강양, 오늘 유부녀가 되었다. 이제 강여사라 불러줄테야. ^^;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11. 12. 4. 22:44
2011.09.13 @Efes, photo by Prol


2011.09.16 @Yerebatan Sarinci Istanbul, photo by Prol



고르고의 세 자매 중 막내인 메두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모든 생명체를 돌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까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쳐다보는 셈이다. 
- 중략 -
메두사의 얼굴은 죽음과의 싸움 역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죽음을 상대할 때도 우리에겐 일말의 기회가 없다. 의학이 엄청나게 발달했다는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 중략 -
아직은 계획에 없다는 이유로,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이유로, 중요한 일 처리가 먼저라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는 건 잘못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서 과연 정말로 중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방황의 기술이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와 경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죽음과의 만남도 반드시 그에 포함될 것이다. 죽음은 납득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경계다. 죽음은 삶을 경솔하게 낭비하지 말라고 외치는, 삶을 존중하라고 호소하는 비밀이다.
- 방황의 기술 中, 레베카 라인하르트 저 장혜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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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11. 11. 27. 16:46

예전에 한 평론가는 뮤지컬계에서 배우 '조승우'의 영향력에 대해 "흥행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냥 이 배우가 출연을 원하는 작품을 만들라."라고 했다. 이렇다고 하면, 영화를 제하고, '조승우'의 제대 후 첫 뮤지컬 출연작은 물론 <지킬앤하이드>였으나, <지킬앤하이드>는 지금의 '조승우'를 만든 작품으로 '조승우'의 재출연이 그리 놀라울 게 없었으니 제껴 두고 나면, 바로 이 작품, <조로>가 의미가 있게 된다. 언젠가부터 너무 화려하기만 한 대형 뮤지컬에 조금 질린 나같은 사람까지도 극장으로 불러낸 데에는 아무렴 '그'를 비롯한 신뢰를 갖게 하는 화려한 캐스팅, 그들의 선택이었다는 거다.

뮤지컬 <조로>는 잘 알려진 스토리와 영웅 캐릭터, 화려한 플라멩코와 액션 등 작품 그 자체로도 충분히 기대치를 높인다. 그러나 잠깐 언급했듯, 화려하기만 한 작품은 때로 의외로 관객의 마음을 싱겁게 내려놓지 않던가. 그래서 조금 불안했던 게 사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난 지금은, 예상한 바 반, 의외로 반 정도 되겠다. 충분히 즐겁기도 했으나, 역시 극장을 나설 때 감동의 도가니? 모 이렇지는 않더라고.

폭군 라몬의 탄압에 괴로워하는 시민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라몬 일당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시민들을 구해 주는 영웅 조로의 활약상과 그의 숨겨진 정체, 주변 인물과의 관계들이 <조로>의 스토리다. 그러하니 무대 위의 <조로>의 매력은 일단은 화려한 검술 액션. 극장에 들어서니 관객 위를 가로지르는 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과연 우리의 영웅은 언제쯤 저 줄을 타고 날아줄 것인가는 나의 관점 포인트 중 하나였는데, 라몬이 루이자와 강제 결혼식을 올리려는 마지막 순간, 멋지게 날아서 루이자를 구하더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액션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결투 이미지를 형상화한 군무 형태로 보여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실제로 칼 부딪히며 싸우는데, 하핫. '조승우'의 작은 체구는 날렵하긴 한데, 각은 좀 아니더라구요. 반면 제복 입은 라몬, 최재웅은 좀 태가 나요.

주인공 디에고는 공부하라고 유학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집시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루이자의 설득으로 디에고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네즈를 비롯한 함께 놀았던 집시들이 동행한다. 그래서 집시들의 플라멩코가 자연스럽게  <조로>의 무대를 여러번 채운다. 스페인의 정열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들의 즐거운 기운은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이네즈, '김선영'의 시원시원한 창법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앙상블의 에너지를 최고로 끌어올린다. 모든 작품에서 변화를 보여준다기보다, 한 캐릭터가 그저 조금 변주만 될 뿐이라는 인상이 아쉬우나, 그녀의 노래, 춤, 연기에 대해 역시 흠은 잡을 수 없다.

아무래도 뮤지컬 <조로>는 위의 두 가지, 액션과 플라멩코가 전부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의외로 반한 것은 하얀 의상을 입은 여자 앙상블들이 민중들의 아픔을 노래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한국적 정서, 한을 공감케 하였는데, 무조건 슬픔을 배가시키기 위해 늘어지는 것과는 다른 애수가 있었다. 앙상블이지만 한 구절씩 솔로 파트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가창력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맘에 들었던 장면은 루이자와 조로의 동굴 장면, 서로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부르는 듀엣 씬은 모든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조승우'가 이런 작품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조로>에는 애드립스러운, 처음엔 조금 의심했으나 애드립은 아닌 듯 하다, 코민 코드가 꽤 많이 등장하고, 상당한 비율로 주인공 디에고이자 조로가 담당하는데, 나의 편견인지 모르나, '조승우'하면 좀 진지해지지 않나?, 게다가 춤까지 연결시키면...... <헤드윅>같은 작품과는 또 다르잖아. 그리고 숨이 가빠 그랬는지, 공연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습 부족인지 두 번의 대사 실수까지 들리니, 조로 캐릭터는 그에게 괜한, 과한이 아니라, 욕심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대 위 배우가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구나가 전해졌다면 관객마저 즐겨야 하는가?는 아직까지는 물음표.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