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09. 6. 13. 23:09

평단과 관객의 평도 좋고, 스스로도 보고 싶다 함에도 연이 안 닿는 작품들이 있다. 여유가 없어 때를 놓치거나 작품을 선택하는 순위에서 어쩌다 보니 밀리거나, 이런 저런 다양한 이유로......

'바람의 나라'의 경우, 초연이 2006년이고 이듬해 앵콜 공연도 했었는데도 이제사 연이 닿았다. 벼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이번엔 운이 좋게 시기가 맞았다.

요즘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초중반,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월간순정만화잡지는 꽤 붐이었고, 그 시작점에 아마 '댕기'가 있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내가 꽤 열심히 이런 저런 수단으로 매달 챙겨 봤던, 내 돈 주고 사기도 몇 번, 언니가 했던 댕기계에 빌붙기도 여러 번, 잡지였다. 연재되던 만화들 중 유명한 작품은 한 둘이 아니다. '불의 검', '풀하우스', 그리고 김진의 대서사시 '바람의 나라'도 있다. 이미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을 두고 원작에 대해 아는 체를 하려는 게 아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원작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를 넘어서 원작에 대한 이해와 경외심을 드러낸 듯 하였기에 짚고 넘어감이다. 참고로 뮤지컬 '바람의 나라' staff list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작.1차 각색: 김진 / 연출. 2차 각색: 이지나', 김진과 이지나는 어마어마한 대서사시를 두어시간의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서로 정말 많이 이야기했을 거라 짐작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그 표현방식에서 여타 다른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다. 대사와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지 않다. 그러나 눈과 귀는 바쁘다. 무대 뒷편에서 보여지는 대서사시의 이해를 돕는 영상을 쫓아가야 하고, 무대 이편 저편에서의 몸짓들을 하나라도 놓칠까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영상은 단순히 설명 문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만 쓰인 것이 아니다. 김진의 만화컷을 이용하여 주인공 무휼의 등장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앞둔 해명의 마지막을 묘사한 씬에서의 저승새 이미지 또한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이라기보다 이미지극, 무용극이라는 평을 받고 있듯 음악과 영상을 배경으로 두고 무대위에서의 몸짓들은 과연 양대 뮤지컬계 시상식에서 모두 안무상을 거머쥘 만 한 것이었다. 특히 고구려와 부여의 긴 전쟁신에서의 안무는 정말 놀라웠다. 그저 화려한 쇼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탭을 이용한 질주하는 말들의 표현과 바람 속에서의 칼놀림,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너무 세련되게 멋있었다.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지 않지만 국악과 양악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대서사시에 무려 랩도 나온다. 신기하게도 어색하지 않다. 많지 않은 노래지만 죽음을 앞둔 해명이 자신의 운명을 두고 부르는 노래나, 무휼과 호동의 엇갈리는 길에 대한 노래는 취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이건 가창력이 좋은 양준모의 역량 덕분이기도 싶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또 하나 인상에 남는 것은 의상인데, 화려한 듯 하면서도 절제된 미가 보인 주요 인물들의 의상도 물론이지만 앙상블들의 의상들이 난 더 기억에 남는다. 그것들은 그들이 표현하는 몸짓에 보탬이 되는 것들이었다. 초반 괴유의 등장에서 나왔던 마이크사고와 호동의 눈에 너무 띄었던 대사 실수가 아주 잠깐 거슬리긴 하였으나 공연장을 나섰을 때 예술의 전당 야외 음악분수가 더 아름답게 보이고 들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족 하나만 더, 괴유 역의 김산호는 이 역할로 꽤 많은 팬들을 얻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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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9. 2. 1. 15:50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베스트소극장뮤지컬상을 탔던 작품이다. 그래서 알게 된 작품인데, 그 때 내가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로 아마 꽤 정신이 없었었지 싶다. 마당극스러운 제목과 포스터에도 불구, 당당히 작품상을 거머쥐는 창작이면 주목할 만도 한데 초연을 그냥 넘긴 걸 보면. 이후 중극장 규모로 극을 키워 작년 연말부터 앵콜 중이다. 관람 후 운이 참 좋다 싶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지금에라도 만났으니. 작년 저조한 공연성적에도 불구, 꾸준히 '더뮤지컬'을 정독하면서 이 작품에 대해 끊이지 않은 칭찬을 접해 온 덕이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3년동안 고향에 발길을 끊었던 종갓집의 두 아들, 백수 석봉과 만년 고시생 주봉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온다. 부자지간만큼이나 형제지간도 좋은 편이 못 되어서 둘은 만나서부터 으르렁대고, 아버지의 숨겨둔 유산 '로또'에 대해 알게 되면서는 더욱 치열한 라이벌이 되어 '로또' 찾기에 달려든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깊은 사랑도 깨닫게 되어 장례를 잘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


자칫 하면 신파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가 뛰어난 연출력으로 전혀 신파스럽지 않게 전개되었다. 종갓집 대문을 이용한 무대활용과 조명을 사용해서 그 장면의 분위기들을 특화하는 연출이 괜찮았다. 힙합 등,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사용됐는데, 음악 자체도 꽤 좋았지만 특히 배치가 예상을 빗나가면서도 적절해서 주의를 집중시켜주는 점이 좋았다. 배우들도 모두 제 몫을 해 줬다. 석봉역의 박정환과는 처음 만남이었는데 허당이지만 그래도 '장남'이고 싶은 연기가 정말 자연스럽더라. 오로라역, 이주원은 특별히 인상깊었던 건 아니었고, 다만 목소리가 좀 얇다 싶었는데, 프로필을 찾아 보니, 나랑 인연은 안 닿았지만, '지하철1호선'에서 '걸레'를 꽤 오래 했더라. 그녀의 '울 때마저도 아름다운 너'를 찾아 들어 봤는데, 여기서는 또 다른 느낌이다. 목소리가 얇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것이...오히려 칼칼?하다 싶은 것이. 지금은 운행을 멈췄지만, 혹 '지하철1호선'이 다시 달리는 때가 오면 그녀의 '걸레'를 무대서 만날 기회가 올까? 추정화라는 배우에 대해 칭찬이 많길래 그녀의 역할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주연이 아니었음에도 그 곧은 눈매와 시원스러운 발성이 '저 사람일까?' 싶게 알아보게 했다. 앞으로 더욱 주목받겠지.

억지스러운 부분이 조금 있지만 무난하게 쓰여진 극본에 잘 만들어진 음악이 더해져 이미 시작이 좋았지만, 이 작품은 유난히 연출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음악이 튀지 않으면서도 신선할 수 있게 했고, 때로 관객석까지 이용한 배우들의 동선까지도 정말 잘 되었다. 현재 뮤지컬계 젊은 창작자들 중 단연 돋보이는 '김종욱찾기'의 작가이지 연출인 '장유정'이 또 그 이름값을 한 셈이다. 장유정의 신작은 앞으로도 챙겨 보게 될 것만 같다.  

덧붙임) 작품을 보고 내용에서 큰 감동을 받는 사람들도 꽤 되었던 듯 싶다. (시놉에서 눈치를 줬 듯 꽤 교훈스럽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면에서의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난 후 이 작품의 한 장면과 자꾸 오버랩이 된다. 두 작품은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시대 '엄마'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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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8. 11. 23. 21:53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했다. 시간 조율이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 이건 그렇다 치자. 근데 돈도 없다. 이건 무슨! 하여튼 그래서 대전에서 반백수할 때보다 공연 보기가 더 안 된다. 그리하여 진짜 진짜 오랜만에 큰 맘 먹고 지른 것이 이 작품이다. 많은 작품 중에서 굳이 이 작품을 꼽은 건 이렇게나 큰 결정을 할 때 우연찮게 꽂힌 게다. 요즘 이 공연이 어떻고 저 공연이 어떻고 이런거 찾아 보고 다닐 여유가 안 되는 탓에...


극장에 가서야 알고 보니 막 무대에 올려 놓은 세번째 공연이었다. 이게 화근이었을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배우들의 눈에 띄는 실수, 예를 들면 가사 버벅대기,들이 꽤 여러번이어서 거슬렸다. 캐스팅따위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도 공연을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캐스팅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테비에역의 노주현, 김진태 더블캐스팅에서 노주현을 택하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텐데...... 노주현 아저씨 연기에 내가 무슨 토를 달겠으나, 그래도 장르가 뮤지컬인데, 모든 노래를 그렇게 연극적으로 하시다니요.-_-;;; 되려 비주얼은 끝내주지만 언제나 무대위에서 안타까운 아쉬움을 보이는 페르칙역의 록군이 이전과는 다른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서 반가웠다. 연기는 아직도 조금 아쉽지만 노래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래도 여자배우들은 제 몫을 해 주었다. 골데역의 이미라와 자이틀역의 방진의의 연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해이는 역시 노래를 잘 부르더라. 특히 테비에와 헤어질 때 부르는 'Far from the home I love'는 정말 좋았다.

사사롭게 흠도 잡고, 또 사사롭게 칭찬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8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흥을 돋울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고, 또 가슴 뭉클해지기도 하니. 그리고 무엇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의미와 그 고운 선율이 주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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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8. 8. 17. 19:27




오랜만의 공연 나들이였다.
정식작품 무대가 아닌 토크 콘서트였지만, 뮤지컬 배우들의 작품 바깥의 모습은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물론 아무렴 그래도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농담 따먹기보다는 진정성이 보이는 노래였는데, '웃기기'에만 너무 치중된 진행은 배꼽을 잡아가면서도 짜증도 같이 불러오긴 하더라.  특히 배우가 진지하게 노래하려고 준비 중일 때에도 농담을 건네는 사회자 정상훈이 많이 거슬렸다.

게스트는 최혁주, 조정석, 임강희, 양준모, 그리고 잘 모르겠는 1인.
이름은 익숙하다 하더라도 무대에서 만난 적이 없던 배우들이어서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특히 기대를 많이 했던 양준모는 실망시키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무대에서 처음 불려지는 거라던 가곡 '천년의 약속'은 특히나 최고. 조정석팬이 가장 많았던 듯 한데, 너무 꽃돌은 내 취향이 아닌지라.

여름특집으로 '공포'컨셉으로 진행시킨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가장 뜬금없었던 건 봉천동 박보살?이라는 무속인을 무대에 올린 것이였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던 거 같지만 정말이지 뮤지컬 콘서트 무대와는 미스매치였다고 본다.

'콘서트'보다는 '토크'에 치중된 무대였던만큼 기대를 온전히 채워주진 않았지만, 많이 웃고, 또 오랜만에 귀가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어진 친구와의 맥주 한잔은 플러스 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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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8. 7. 27. 14:07

도버해협을 건너기 위해 무려 105유로를 들여 유로스타를 타야 하는 재정적 어려움과 번거로움에도 짧은 여행일정에서 런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저 웨스트엔드 때문이었고, 다른 많은 준비들이 미흡한 가운데에서 출국 하루 전날 내가 택한 나의 스케줄은 모든 것을 제껴 두고 영화 '빌리 엘리엇'을 다시 한 번 감상하는 것이었다. 첫 도시였던 런던은 기억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런던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빌리의 무대를 만나러 간 도시였고, 바라던 대로 그 곳에서 만난 빌리가 내가 기대한 바를 온전히 채워줬기 때문이다.

영화' 빌리 엘리엇'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뮤지컬 감상을 위한 공부였기 때문이었는지 이미 뮤지컬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처럼 뮤지컬적인 요소가 영화 곳곳에 있다는 것이었고, 예상한 대로 그 요소들은 무대에서 온전히 빛을 발한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사실성이 더해져 빌리의 춤실력 향상이 꽤나 느렸던? 것에 비하여 무대에서는 그야말로 일취월장하여 놀라운 움직임들로 채워졌고, 엘튼 존의 음악과 너무 잘 어울려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엇'의 '빌리'역은 오디션을 통하여 선발한 후 계속적으로 트레이닝하여 키워지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정말 저 어려운 동작들을 어떻게 저 아이가 소화해 내는 것인지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감탄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나 성인 빌리와 함께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장면과 수없이 돌아다니는 동영상 Electricity 를 부르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유럽의 여러 미술관 다니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세상에 인간의 몸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는 듯 한데, 음악에 맞춰진 정교한 움직임은 순간순간이 그림이 되는 듯 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감동 받은 장면은 빌리가 국립발레단으로부터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감격에 겨워 가족에게 알리는 것도 잊은 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는데, 이 부분이 무대에서는 가족들을 놀래켜 주기 위해 빌리가 불합격한 듯 연기하는 것처럼 연출된 것이 하나. 영화의 엔딩은 빌리가 성인이 되어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게 되고 그걸 아버지와 형이 보러 오는 것이기에 무대에서도 짧게라도 매튜본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을 보나 싶었건만, 무대는 빌리가 런던으로 떠나는 것으로 끝낸다. 아쉬워 아쉬워...

언제고 어디서나 내 발목을 잡는 그놈의 영어 때문에 대사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흐름은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기대보다 더 놀라운 움직임들이 무대에서 펼쳐짐에 감동했던 시간이었다.






그제 포털뉴스를 얼핏 보니 2010년 빌리의 무대를 우리나라에 올릴 예정인가본데, 과연 빌리역은 누가 소화해 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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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7. 11. 26. 09:41

언젠가 '뮤지컬도 맞춤이 전략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관객들에게 무작정 많이 봐달라 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관객층을 공략하는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고. 우리의 아줌마들을 신나게 했던 '메노포즈'와 1990년대 TV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 추억여행을 안내한 '젊음의 행진'을 대표적인 예로 소개했다.

'텔 미 온 어 썬데이'도 같은 길을 걷는다. 모노 뮤지컬이라는 신선함에 화려한 캐스팅, 인기 연출가까지 홍보에 한 몫 했겠으나 대놓고 지목한 30대초반 싱글여성, 딱 그 중심에 서 있는 나는 '수많은 브리짓 존스들에게 띄우는 뉴욕의 로맨틱 러브레터'라는 홍보 문구 한 줄만으로도 충분히 걸음을 하였으리라.

새단장 후 화려해진 두산아트센터로비를 지나 들어선 연강홀. 넓지 않은 사각무늬의 마름모꼴 무대위에 쇼파 하나. 여자모노뮤지컬에 어울리게 깔끔한 무대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간단한 소품들로만 채워졌으나 다양하게 사용된 화려한 조명과 잘 어울려서 무대를 따뜻하게 채웠다.

'Tell me on a Sunday', '(이별통보는) 일요일에 말해 줘요'라고 제목이 말하듯 이 작품은 싱글여성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뭔가 다를 거 같은 뉴욕으로 건너온 데니스. 그곳에서 시작된 세 번의 사랑은 그 모양은 제각각이나 익히 짐작되듯 모두 핑크빛으로 시작되었지만 상처로 끝이 난다. '뉴욕이라고 모 다르겠니?' 라고 관객에게 묻듯. 이 지점에서 역시 공감대라는 걸 무시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명의 배우만 나와서 들려주듯 하는 뻔한 이야기는 공연 중간중간  하품을 해 대는 남자관객들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분명 지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데니스를 안아주고 싶었고, 그녀가  'Somewhere, Someplace, Sometime'를 부를 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얼마전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까지 타며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김선영씨의 성량이야 익히 알았던 것이나, 특별히 그동안 보아왔던 배역들, 루시, 에비타, 알돈자,와는 다른 푼수끼 있는 모습이 신선해서 좋았다. 그리고 모노뮤지컬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남자배우들을 목소리만으로라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

마지막으로 소극장에서의 웨버 음악은 어떤 느낌일 지 궁금했는데, 몇 개 넘버는 입가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역시 웨버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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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7. 11. 5. 10:31

본 지 한참인데 금방 후기가 써지지 않았다.
너무 늦게 끝나 친구의 버스시간을 걱정하며 허둥지둥 나왔지만 친구를 배웅한 후에는 결국 가슴에 무거운 뭔가가 나를 답답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스위니 토드는 즐겁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되려 좀 힘들다고 할까?
그렇지만 힘든 만큼 충분히 만족스럽다.

시놉시스도 알고 있었고, 시놉만큼이나 실제 무대도 기존의 뮤지컬 공식을 완전히 깬다는 기사도 여럿 접했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는 한 가운데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직접 만난 무대는 2시간50분의 제법 긴 시간동안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집중을 끌어내면서도 생각처럼 피튀기는 엽기는 아니여서 그 수위 조절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렇다 해도 작품은 익히 들어왔던대로 기존의 뮤지컬과는 사뭇 달랐는데, 일단 철창으로 구성된 음침한 무대는 귀를 찢어대는 소음을 담아내기에 적절했다. 손드하임 음악의 그 불협화음은 그 명성대로 굉장히 낯선 것임에도 극과 너무 잘 어울려서 놀라게 했다. 내용이야 워낙에 엽기적인 한 남자의 삐뚤어진 복수극으로 이 역시 뮤지컬이란 장르와는 어울리기 쉽지 않음에도 비극이 불러온 비극을 각각의 캐릭터들이 갖는 논리와 이야기들로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게 한 구성은 뮤지컬이 즐거운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스위니의 류정한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기에는 조금 순진하지 않나 싶었는데 어쩌면 스위니는 정말 순진한 한 남자이지 않았을까?  인육파이라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하며 능글맞게 복수에 협조하는 러빗부인, 박해미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 줬지만 간혹 러빗부인보다 배우 박해미가 드러나는 게 박해미에겐 약점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안소니와 조안나가 극에서 겉도는 게 거슬렸으나 워낙 비중이 낮았으니 넘어갈 수 있고, 무엇보다 절뚝거리는 바보 연기를 리얼하게 하면서 고음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었던 홍광호 노래에 대한 칭찬은 나도 빼놓을 수 없겠다.

쏟아지는 신발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떼로 널부러지는 사람들도 인상깊었다. 스위니의 의자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그보다도 대야를 마주하고 선 배우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요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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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7. 9. 27. 21:05

2003년 아카데미가 선택했던 그 영화로 더 유명해진 뮤지컬 시카고의 한국공연.

영화가 워낙에 잘 만들어진데다 동양인은 애초 동양인이기에 어색할 수 있는 캐릭터인지라 우려도 있었고, 나 역시 조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으나 충분히 만족하고 나올 수 있었다.

배해선은 충분히 귀엽고, 백치스러운데다 약아빠진 록시 하트를 그 연륜에 빛나는 연기로 표현했다. 시시때때 바뀌는 그 표정연기는 역시 가까운 자리를 욕심낸 보람을 느끼게 해 줬고, 특별히 성기윤과 호흡을 맞춘 그 꼭두각시 인터뷰는 최고였다.

최정원의 연기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을 가끔 보지만, 나는 동작하나하나에 그만한 정성을 기울이는 배우가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코믹에서 섹시까지 그 엄청난 안무를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소화해 내는 그녀의 어디에서 마흔 가까운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까?

All That Jazz  연습중인 최정원

성기윤은 리처드보다 되려 나아서 돈 밝히는 사기꾼에 적절한 빌리였다.

마마 김경선의 카리스마와 너무나 오페라틱한 메리의 목소리가 좀 아쉬었지만 남녀앙상블들의 움직임도 크게 빠지지 않았던 것이 남자들 허리가 어쩜 그리 유연할 수가 있니?

티내진 않았지만 사실 굉장히 우울한 마음으로 상경했고, 당일 취소할 수 있으면 취소하고 싶단 생각까지 수없이 했는데, 즐겁게 보고 나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던..

시카고는 어이없기까지 한 언론플레이와 헛점을 가진 배심제도, 그것이 통하는 그 시대 미국을 풍자한 어찌보면 꽤 심각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작품을 본 후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리 없다. 이러한 반응이 작품의 의도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록시와 벨마가 그들이 잡고자 했던 인기의 덧없음을 깨달았고 이후 오히려 더 즐겁게 함께 무대에 올랐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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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낌2007. 9. 3. 21:47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했을 때 이 작품을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반기나 싶었는데 역시 그럴만한 작품이었다.

무대.. 단연코 멋스러웠다.
분명 지하감옥인데 극중극에서 자연스럽게 여관주막이 되더니 어느때는 해바라기 찬란한 벌판이 된다. 막전환없이 같은 무대에서 관객들은 다른 공간을 본다. 그리고 체스판을 도입한 부분. 센스만점!

서곡부터가 남달랐던 음악. 어느 한곡 버릴 수가 없다.
김문정감독님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좋은 음악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극이 끝난 후 나는 피트석가까이로 가서 마지막 연주가 끝났을때 정말 열심히 박수 치고 나왔다.

죄수와 극중극의 배역을 오가야 하는 배우들의 연기. 모두들 제몫을 한다.
알돈자 김선영의 처절함도 좋았고 절대동안 권형준의 산쵸도 귀여웠다. 무엇보다 또한번 티켓전쟁을 불러온 조승우와 더블캐스팅되어 부담도 많았을 정성화를 향한 기립박수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져 젊은이와 노인사이를 오가는 기술적인 연기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그에게서는 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보였다. 그는 정말 세르반테스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엔 감동의 메세지가 있다.
익히 알려진 것으로는 과대망상 허풍쟁이인 돈키호테, 그러나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세르반테스가 왜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는 미친듯이 돌아가는 현실에 정의를 부여하는 진정한 기사인 것이다.

현실과 이상.
우리는 과연 꿈꾸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잊을 수 없는 명곡.

Posted by nobelnant
보고 듣고 느낌2007. 7. 22. 21:04
'댄싱 섀도우'의 마케팅 초점은 고차범석 선생님의 희곡 '산불'을 가지고 각 분야 세계 거장들이 손을 댔다는 것이었다. 과연 대한민국 창작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세계적 대작 뮤지컬이 나와 준다면 그런 제작진을 끌어올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라고 덮어 주리라 생각했다.

깊숙히 더 신비한 것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숲과 또 그만큼 아름다웠던 숲의 영혼들의 움직임. 고음에서도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김보경의 'Dancing with my shadows'. 믿음이 가는 배해선의 연기와 노래. 너무 짧은 게 아쉬웠지만 숲의 영혼들의 춤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던 마을 여인들의 발랄한 춤들.

무대도, 음악도, 춤도, 배우들까지 꽤 좋았는데, 그런데 왜 감동하지 못했을까?
이해되지 않아서.

나쉬탈라는 왜 마을 여인들의 그 간절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숲의 나무들을 지키는지? 솔로몬이 탈영한 이유는? 신다가 솔로몬을 사랑한 건 맞을까? 도무지 주인공들의 심리변화가 이해되지 않아 내내 물음표를 그리다 마지막에 신다와 마을 여인들이 희망을 노래할 때 나는 그 진정한 순간에 결국 피식 웃었다니깐.

글로벌화를 위해 우리나라의 특이한 배경과 정서를 전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로 각색했다는 꽤 타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대에 올려진 콘스탄자 마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너무나 우화스럽기만 해서 상황 전개에 대해 물음표를 그리는 관객들을 향해 우격다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만 더. 앙상블까지 통틀어 키가 가장 컸던 신성록과 마찬가지로 모든 배우들을 통틀어 가장 단신이었던 김보경의 탱고. 딱 봐도 안 어울리는 거야 그렇다 해도, 격정적으로 움직이면서 다리만 줄창 걸쳐댄다고 탱고가 되는건 아니잖아!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