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09. 7. 29. 22:30

200612월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다음해 토니상 11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8개 부문 수상이라는 이력이 아니더라도 'spring awakening'에 대해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주워 들은 게 있는 관객이면 궁금해서라도 이 작품의 국내공연소식이 반가웠으리라. 나도 그런 관객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공연을 본 이후, 나는 쭉 너무 벅차다.

 

브로드웨이 초연 때 그랬다고 하듯, 이 작품은 현재 국내공연계의 '뜨거운 감자'. 서두에서 언급했듯 워낙에 관객들이 기다려 온 공연인데다,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이 제공했던 뉴스거리들은 국내에서도 똑같이 이슈가 될 것들일테니 당연하다. 그리고 직접 만난 무대는 그 많은 이야기들에 정직하게 답해 준다. 어느 하나도 '헛소문'이 아니었다. 

 

                    무비위크 뉴스에서 이미지 발췌 http://www.movieweek.co.kr/article/article.html?aid=20205

원작은 1891년 독일 표현주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에 의해 쓰여진 동명의 희곡이다. 당시 엄격한 규율의 청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15년이 지나서야 처음 무대에 올려졌을 만큼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이후 110여년이 지나 브로드웨이 역사에 새로운 이력 한 줄을 보태게 되는 뮤지컬로 만들어지는데, 억압적인 기성세대의 오류를 비판한 그 기본정신을 놓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다룸에 직설적이었다던 그 표현방식도 그대로 유지하는데, 무대 중앙에서, 환한 조명아래, 꽤 과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런 장면마다 관객들이 집중하는 것은 그 수위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진정성이다. 나는 매번 슬펐다. 기본정신을 지켰다는 것의 증거일 것이고, 이 작품이 잘 된 작품인 이유일 게다.

 

기본이 탄탄한 원작만의 공이라면 뮤지컬 'spring awakening'이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건 좀 과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택하면서 제작진이 덧입힌 극작, 음악, 연출이 정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원작에 기댄 바가 있으니 극작은 그렇다 쳐도(원작이 있다고 해서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극본의 역할을 절대로 무시하지는 않는 바이다.) 이 작품의 음악과 연출은 정말 탁월하다. 공연을 본 이후 줄곧 오리지날 음반을 듣고 있는데, 곡마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 그들이 분출하고자 했던 것들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공연장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극 속에서 가사 한 줄의 의미보다 그 장면에서 그 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정말 120%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런 음악에 그런 멋진 안무라니. 고개만 까닥거려도 힘이 느껴지는데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Totally Fucked'는 가히 최고일 수밖에.

 

음악이 좋은 작품들은 많다. 음악만으로 그 많은 뉴스들은 욕심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놀라운 건 또 있다. 바로 연출. 기존의 뮤지컬 공식을 완전히 깨 버렸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던 배우가 갑자기 품 속에서 핸드마이크를 꺼내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누가 상상했을까? 다른 배우들의 행동이 멈춰진 완전히 정지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는 배우만이 살아 자신의 속마음을 노래하는 연출은 그 전달력에서 효과를 더했다.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학생들의 동선도 참 좋았다. 하다 못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코러스의 배치마저 좋았다. 작품을 보기 전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의 서면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 사람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갖는 자부심과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는 확신이 느껴져서 참 궁금했는데, 이 사람은 밉게 잘난 체를 해도 그냥 인정해 줘야 할 거 같다.

 

덧붙여 그저 참 예쁘다, 특이하다 생각했던 무대를 얘기해야 한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보면서 빨간 벽돌로 된 무대 벽면 그 자잘한 소품들이 어느 하나 그냥 걸려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그것들마저 참 슬픈 사연들이다. 나중에 혹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공연을 보기 전 먼저 프로그램을 볼 것을 권한다. 작품에 대해 알고 볼 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일 것 같다. 마지막은 뱀발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팬심이므로. 배우들에 관하여. 멜키오를 맡은 김무열은 너무 멋있게 성장을 한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 그 기럭지 얘기만이 아니라. 그의 배우 이력을 두고 하는 말인데, 노래도 날로 나아지고. 모리츠 역의 조정석은 내 타입은 좀 아닌 꽃돌이라 여겼는데, 그 배우가 인정받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 당찬 신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벤들라 김유영에게도 좋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일제 김지현의 슬픈 목소리도 잊혀지지 않고.

 

후기가 꽤 길어졌는데, 사실 지금 고생 꽤나 하고 있다. 내가 느낀 벅찬 감동은 저 위에 있는데 잘 표현이안 되서 상투적인 문장만 늘어놓은 거 같다. 이 시점에서 내가 무얼 더할 수 있겠는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서 직접 보길. 취향과 상관없이 이런 작품도 있다는 것만으로 괜찮은 시간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닌 존재들이 거치는 이 섬세한 시기를 우리는 '사춘기'라고 부른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