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06. 9. 5. 17:36

작년 11월말, 차경찬 작곡가님과 몇통의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요덕스토리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계기였다.

올봄 요덕스토리가 처음 무대에 올려졌고, 반응은 너무 당황스런 것이었다.
'박근혜도 봤다더라'가 이슈가 됐고, 보수언론의 지지가 노골적이었다.
반면, 진보적인 언론과 평론가들은 또 그들대로 노골적인 비판을 했다.
평이 이렇게 극과극인 게 오히려 화제가 됐던 걸까? 더 놀라운 건 기대이상의 흥행대박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이제사 '이런 작품이었구나' 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예술장르중에서 유독 진보적이라는 걸 고려할 때,
고발극, 정치극은 뮤지컬장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우리나라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시도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거기다 충분히 잘 만든 작품이었다.
가사전달이 명확하지 않은 앙상블이 아쉬었지만, 짜임새 있는 안무로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차경찬 작곡가님과 유헤정 작사가님이 만들어 낸 노래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그러나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북한인권문제의 실상을 보이겠다는 욕심에 조연들 하나하나에 비중이 너무 실렸다.
자칫 산만해 질 수도 있었다.

이에 반해 수용소 파견대장이었다가 주인공 강련화와 자신의 핏줄 리요덕으로 말미암아 변해가는 인물 리명수가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계기 등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조연들의 이야기를 과감히 쳐내고 주연들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 줘야 했지 않을까?
리명수 아저씨 갑자기 착해져서 사실 '역시 피는 진한 것인가?' 이게 주제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또 하나 공연내내 굳이 저 캐릭터가 필요했을까? 의문을 지울 수 없었던 리태식이라는 인물.
유일한 크리스챤으로서 기독교적 메세지를 남기고, 순교하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기독교적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목적이었다면, 그는 좀더 적극적이었어야 했다.
더더욱 그의 순교는 그리 의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리태식이란 인물은 극에 빠졌어도 극의 흐름에 아무영향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크리스챤임에도 리태식을 통해 보여준 작품속 기독교 메세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은,
문화속의 어줍잖은 기독교 색채는 때로 비크리스챤들에게 거부감만 불러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쌩뚱맞아보였던 씬도 하나 있었다.
리태식이 락커로 변신해 한판 쇼를 벌이는 장면.
뮤지컬이란 장르에 코믹하고 화려한 쇼적인 장면이 없으면 안되지 않나 하는 소심함만 들켰지 싶다.

배우들에 관해서,
강련화역의 최윤정씨에 대해서 칭찬이 많던데, 사실 나는 그리 노래를 잘 부른단 생각을 못했다.
연기는 라혁철역의 김준겸씨가 제대로 잘 하시더라. 탤런트 권오중씨랑 너무 닮아서 계속 권오중씨 아닌가 확인을 했었는데, 프로필 사진을 보니 김준겸씨가 더 잘 생겼다.
그리고, 몰랐던 건데, 리태식역으로 박완규씨가 나오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는 박완규씨만 단연 튈 정도로 잘하더라. 사실 이건 에러였는데, 너무 튀어서 다른사람들 목소리를 잡아먹는 현상이;;;;;

사실 꼬투리 잡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썼다만,
정치색이 너무 짙네, 이념조장이네, 이런 얘기 다 제껴 두고 뮤지컬작품으로만 바라봐도,
창작극으로 이정도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거 같다.
아예 빼던가, 아니면 차라리 좀더 적극적이기를 바랬던 기독교 메세지 전달에 대해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충분히 잘 전달되고 있다고 보여지니 정말 잘 만들었고, 감동도 있다.

어쩌면 형식과 작품성에 대해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기전에
이념과 사상을 표면에 드러냈기 때문에, 그 내용만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되려 비판을 받은 듯.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관객들 역시 뮤지컬작품으로서 음악이나, 구성, 극의 흐름으로 감동받기보단,
실화라고 강조되어지는 북한의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내용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니, 그것도 OK.

거기다 커튼콜이 있은 후 정성산 연출가님이 직접 나와
"요덕스토리는 쇼가 아닙니다." 라고 선언하심으로
이것은 의도된 연출임을 드러내시기까지 하니, 이 작품은 완전히 성공인 게다.

정성산 연출가님을 비롯해 제작진중에 상당수의 탈북자가 있고, 요덕수용소 출신들도 몇 포함된다.
잘 만든 예술작품 하나 올려보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루에 몇통씩 협박 문자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작품을 쓰시는 거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으면 좋겠다.
보수네, 진보네, 이런 이념싸움이 아니라,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형태의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이란 경계를 넘어 적어도 북한에 대한 무관심은 거둬낼 수 있기를 바란다.

뮤지컬 넘버중 '기도'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가 남는다.

평양종합예술대학 무용학부를 나오시고, 요덕수용소에 수감도 되셨다가 한국에 오셔서
이번 공연 북한안무를 맡아주신 김영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함께 사진 찍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