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걷는 길이 그림.
박해의 흔적, 동굴교회 벽화.
물이 너무 고팠던 탓에...
벼르던 겨울 제주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후 봄의 문턱에서야 처음 생각과 꽤 다른 형태로 만나게 되었다. 알차게 세울 여유도 없었던 터라 짜여진 계획은 뒤로 하고, 상황에 발길을 맡겼다. 그래서 더 맛깔스러운 여행이 되었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해안도로와 비와 돌풍 속에서 올랐던 오름은 전혀 다른 '좋음'을 경험케 했다. 보통의 여행에는 참 적합하지 않았을 엄한 날씨는 되려 새벽에 길을 나서면 회색건물 속에 갇혀 매일을 보냈던 나에게 온전한 자연을 맛보게 해 줬다. 그리고 모녀사이는 정말 오묘한 것인 만큼 엄마와 함께 한 걸음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의 감정들로 채워졌다.
친구는 정의하기를 여행은 위로라 했다. 많은 볼거리도, 즐거운 놀거리 덕분도 아니었다. 그저 넓은 바다와 몽환적인 안개, 비록 산성비일지라도 내 얼굴로 흘러 내리는 비가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이쪽 언어로 은혜의 단비였다. 이런 고백이 친구가 얘기하던 위로이겠지. 좋은 사람이 말한 쉼일테고, 내가 기대했던 재충전.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줘. 나와 내 혼란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해 줘. 나와 내 수치감 사이에 대서양 전체를 넣어줘.'
- Alain de Botton [A week at the airport] 중에서 -
다시 일상이다.
요이땅!
덧붙임 하나.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기꺼이 맛있는 전복죽을 대접해 준 쏭명양. 땡스어랏.
덧붙임 두울. 여러가지로 도움 주셨던 동네아저씨. 고맙습니다.
도버해협을 건너기 위해 무려 105유로를 들여 유로스타를 타야 하는 재정적 어려움과 번거로움에도 짧은 여행일정에서 런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저 웨스트엔드 때문이었고, 다른 많은 준비들이 미흡한 가운데에서 출국 하루 전날 내가 택한 나의 스케줄은 모든 것을 제껴 두고 영화 '빌리 엘리엇'을 다시 한 번 감상하는 것이었다. 첫 도시였던 런던은 기억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런던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빌리의 무대를 만나러 간 도시였고, 바라던 대로 그 곳에서 만난 빌리가 내가 기대한 바를 온전히 채워줬기 때문이다.
영화' 빌리 엘리엇'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뮤지컬 감상을 위한 공부였기 때문이었는지 이미 뮤지컬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처럼 뮤지컬적인 요소가 영화 곳곳에 있다는 것이었고, 예상한 대로 그 요소들은 무대에서 온전히 빛을 발한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사실성이 더해져 빌리의 춤실력 향상이 꽤나 느렸던? 것에 비하여 무대에서는 그야말로 일취월장하여 놀라운 움직임들로 채워졌고, 엘튼 존의 음악과 너무 잘 어울려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엇'의 '빌리'역은 오디션을 통하여 선발한 후 계속적으로 트레이닝하여 키워지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정말 저 어려운 동작들을 어떻게 저 아이가 소화해 내는 것인지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감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