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는 단 6.6유로로 메인 디쉬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마침 근처라고 하니 고민 없이 직진이다. 식당 이름은 씨븐슈텐 브로우Siebenstern Brau, 읽을 줄도 모르고 뜻은 더욱 모른 채 찾아가니 모든 표시가 ‘7Stern Brau’다. ‘sieben’이 ‘일곱’인가 싶어 전부 뜻을 찾아보니 ‘stern’은 ‘별’, ‘칠성양조’ 정도 되나 보다. 독일어는 전혀 까막눈인데 이번 여행은 독일어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자리에 앉았는데 홀을 지나 나오는 테라스를 추천해 준다. 높은 나무와 차양이 적당히 있어 그늘은 지면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드는 아름다움은 맘껏 즐길 수 있는 자리다. 점심 특별가 메뉴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아 보이는 것으로 선택했다. 바로 립, 혼족이 흔해진 시대지만 한낮 환한 식당에서 혼자 립을 먹는 것도 어쩌면 여행 중에만 누리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고기도 고기지만 사이드로 나온 감자가 맛있어서 만족한 식사였다.
식사 후 향한 곳은 오전에 함께 티켓을 사 두었던 무목이다. 무목은 엠큐에서 가장 눈에 띄는데 큰 바위를 연상시키는 회색건물이 창문조차 없어 동화 속 공주들이 수십 년간 갇히곤 하는 감옥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미술관이니 특이한 작품들이 많아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작가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내내 물음표였다. 그들은 정녕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하다. 전시관 중 한 곳은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모아져 있었고 한 구석에는 작업실도 있었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이러한 기회와 배려가 참 좋아 보인다.
엠큐 안마당에는 ‘ㄷ’를 눕혀 놓은 모양의 의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사람들이 주로 누워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동행과의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나도 그들처럼 따스한 햇볕에 그냥 나를 맡긴다. 여행 중 이런 여유를 기꺼이 갖는 내가 좋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과 몸이 그 시간에 원하는 걸 누릴 줄 아는 것. 물론 돈과 시간을 아껴 온 걸음이니 많이 보고 듣고 하고 싶기도 하지만 숙제 하듯 관광지를 찍고 싶진 않다. 지금은 게으르고 싶으니 게으르자.
슈타츠오퍼의 오페라는 이미 매진이었기 때문에 대신 폭스오퍼Volksoper에서 공연 중인 오페라 ‘마술피리W. A. Mozart, Die Zauberfloete’를 예매했다. ‘volk’는 ‘국민, 민중’의 뜻으로 슈타츠오퍼보다 한 단계 아래의 시립 오페라극장이다. 극장 근처에서 저녁을 하려는데 검색을 해 봐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독일어 메뉴를 보며 헤매고 있으니 친절하게도 영어 메뉴를 가져다 줬다. 동행이 소고기 요리를 하나 고르고 곁들일 채소 요리를 함께 주문했다. 덩어리째 삶은 소고기가 육수에 담겨 있었고 소스가 함께 나왔는데 요리의 이름은 ‘타펠스피츠tafelspitz’로 오스트리아 대표 음식이라고 한다. 고기가 정말 부드럽고 곁들여 나온 으깬 감자와 너무 잘 어울렸다. 생야채 샐러드를 기대했던 채소 요리는 예상과 달리 몽땅 푹 익혀져 있어 익힌 당근을 먹지 않는 동행을 당황하게 했지만 이것도 내 입에는 잘 맞았다. 점심에 립을 먹은 탓에 배가 너무 빨리 차서 충분히 먹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공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독일어를 모르니 줄거리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황제와 귀족들이 아니라 평민들을 관객으로 생각하고 쓴 작품이어서 선율과 내용 모두 고품격인 부분과 일상적이고 민속적인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사를 알아 듣지 못해도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나 보다. 오페라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연기들도 모두 빠지지 않았다. 특히 코믹한 역할을 하는 커플,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를 연기한 두 배우는 정말 잘해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공연은 재미있게 봤는데 끝나니 엄청난 피곤이 몰려왔다. 빈 필, 할슈타트, 오페라까지 삼일 째 저녁 시간에 쉬지 못한 탓인 듯하다. 여행 중 체력이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좋은 게 아니게 된다. 쉼이 필요하다. 돌아가는 걸음을 서두른다.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