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낌2008. 2. 1. 11:12

뮤지컬 '스위니 토드'

많은 이들이 '팀 버튼과 조니 뎁'으로 이 영화를 기대하고 기다렸겠지만 나에게는 팀 버튼도 그저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일 뿐이었으므로 이 영화를 보고파 했던 것은 전적으로 손드하임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영화화였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 여자애는 우리의 토드씨가 면도칼을 휘두를 때마다 고개를 돌려대더라만, 나는 내용을 다 알고 있었고, 이 영화가 아무렴 피가 낭자하기야 하지만 시청각을 이용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순수한 공포물도 아니니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같은 작품을 영화와 뮤지컬로 모두 만났을 땐 으레 그렇듯 나의 감상 포인트는 스크린과 무대는 어떻게 다를까? 였다.

영화는 공간적인 제약이 없다. 훨씬 리얼하게 장면들을 구현해 낼 수 있다. 지하하수구에 기어다니는 쥐들을 무대에 풀어놓을 수는 없을 테니깐. 보통은 이렇다. 무대보다 영화는 더 리얼한 영상을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 '스위니 토드'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물론 제약없는 장면들을 담은 것은 맞다. 토드의 면도칼이 놀려질 때, 무대에서는 상징적으로 피가 흘렀을 뿐이지만 영화에서는 날카로운 것에 목을 베이면 실제로는 저렇겠지 싶게 피가 폭포수처럼 솟구치더라. 그런데, 난 오히려 영화'스위니 토드'에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 무대보다 더한 거리감을 경험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그간에는 그저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던 '팀 버튼' 감독의 것인가 보다. 모든 장면들이 그림 같았다. '그림처럼 아름답더라'가 아니고, 정말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배우들도 진짜 사람같지 않더라. 이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표정 영 어색한 안소니와 조안나는 말할 것도 없고 토드씨와 러빗부인의 분장과 표정도 만만치 않더라. 이런 느낌은 피크닉씬에서, 이어지는 러빗부인의 상상장면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회색조의 음침한 런던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사용한 화려한 색깔들의 패턴들.. 정말 죽이더라. 그리고 조니 뎁. 이 배우.. 이렇게 표정이 멋진 배우인지 그 전에 미처 감탄하지 않은 게 미안할 정도였다. 무표정으로 표정을 만드는 느낌.

이렇게 그림 감상하듯 장면들을 지켜보는 차원에서는 정말 만족하고 나왔다. 아마도 나는 다 아는 내용이었으니깐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에 큰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된 덕이겠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무대가 나는 훨씬 좋다. 음악, 라이브로 진행되는 몸짓과 노래 등 뮤지컬이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영역을 제하고. 오히려 영화가 더 유리할 수 있는 공간표현에 있어서도 (내가 미술작품 감상하듯 스크린에 펼쳐진 화면들에 감탄했음에도) 나는 무대가 좋았다. 그건 제한된 공간이어서 리얼하게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이해를 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무대구현의 팁 같은 것들이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무대이지만 배우들의 동작과, 어느 한 소품으로 무대를 특정한 공간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과 그 행동에 대한 이해를 관객에게 맡기는 태도. 나는 그래서 무대가 좋더라.

'스위니 토드'도 그랬더라.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