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는 단 6.6유로로 메인 디쉬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마침 근처라고 하니 고민 없이 직진이다. 식당 이름은 씨븐슈텐 브로우Siebenstern Brau, 읽을 줄도 모르고 뜻은 더욱 모른 채 찾아가니 모든 표시가 ‘7Stern Brau’. ‘sieben’일곱인가 싶어 전부 뜻을 찾아보니 ‘stern’’, ‘칠성양조정도 되나 보다. 독일어는 전혀 까막눈인데 이번 여행은 독일어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자리에 앉았는데 홀을 지나 나오는 테라스를 추천해 준다. 높은 나무와 차양이 적당히 있어 그늘은 지면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드는 아름다움은 맘껏 즐길 수 있는 자리다. 점심 특별가 메뉴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아 보이는 것으로 선택했다. 바로 립, 혼족이 흔해진 시대지만 한낮 환한 식당에서 혼자 립을 먹는 것도 어쩌면 여행 중에만 누리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고기도 고기지만 사이드로 나온 감자가 맛있어서 만족한 식사였다.

 

식사 후 향한 곳은 오전에 함께 티켓을 사 두었던 무목이다. 무목은 엠큐에서 가장 눈에 띄는데 큰 바위를 연상시키는 회색건물이 창문조차 없어 동화 속 공주들이 수십 년간 갇히곤 하는 감옥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미술관이니 특이한 작품들이 많아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작가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내내 물음표였다. 그들은 정녕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하다. 전시관 중 한 곳은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모아져 있었고 한 구석에는 작업실도 있었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이러한 기회와 배려가 참 좋아 보인다.

 

엠큐 안마당에는 를 눕혀 놓은 모양의 의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사람들이 주로 누워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동행과의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나도 그들처럼 따스한 햇볕에 그냥 나를 맡긴다. 여행 중 이런 여유를 기꺼이 갖는 내가 좋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과 몸이 그 시간에 원하는 걸 누릴 줄 아는 것. 물론 돈과 시간을 아껴 온 걸음이니 많이 보고 듣고 하고 싶기도 하지만 숙제 하듯 관광지를 찍고 싶진 않다. 지금은 게으르고 싶으니 게으르자.

 

슈타츠오퍼의 오페라는 이미 매진이었기 때문에 대신 폭스오퍼Volksoper에서 공연 중인 오페라 마술피리W. A. Mozart, Die Zauberfloete를 예매했다. ‘volk’국민, 민중의 뜻으로 슈타츠오퍼보다 한 단계 아래의 시립 오페라극장이다. 극장 근처에서 저녁을 하려는데 검색을 해 봐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독일어 메뉴를 보며 헤매고 있으니 친절하게도 영어 메뉴를 가져다 줬다. 동행이 소고기 요리를 하나 고르고 곁들일 채소 요리를 함께 주문했다. 덩어리째 삶은 소고기가 육수에 담겨 있었고 소스가 함께 나왔는데 요리의 이름은 타펠스피츠tafelspitz로 오스트리아 대표 음식이라고 한다. 고기가 정말 부드럽고 곁들여 나온 으깬 감자와 너무 잘 어울렸다. 생야채 샐러드를 기대했던 채소 요리는 예상과 달리 몽땅 푹 익혀져 있어 익힌 당근을 먹지 않는 동행을 당황하게 했지만 이것도 내 입에는 잘 맞았다. 점심에 립을 먹은 탓에 배가 너무 빨리 차서 충분히 먹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공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독일어를 모르니 줄거리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황제와 귀족들이 아니라 평민들을 관객으로 생각하고 쓴 작품이어서 선율과 내용 모두 고품격인 부분과 일상적이고 민속적인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사를 알아 듣지 못해도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나 보다. 오페라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연기들도 모두 빠지지 않았다. 특히 코믹한 역할을 하는 커플,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를 연기한 두 배우는 정말 잘해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공연은 재미있게 봤는데 끝나니 엄청난 피곤이 몰려왔다. 빈 필, 할슈타트, 오페라까지 삼일 째 저녁 시간에 쉬지 못한 탓인 듯하다. 여행 중 체력이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좋은 게 아니게 된다. 쉼이 필요하다. 돌아가는 걸음을 서두른다. 푹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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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적응이 된 건지 아니면 할슈타트 여독 때문이었는지 새벽에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깊이 잤다. 오늘은 저녁에 오페라를 보는 것 외에는 미리 생각해 둔 일정이 없다. 동행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일단 멈춤이었다. 자기가 본디 여행 중 계획 세워 움직이지 않는데 본연의 자세를 잃은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제안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할슈타트 여파인가 싶어 흠칫 놀랐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할슈타트행 기차를 타러 갈 때 몇 번 플랫폼인지, 위치는 어디인지, 당일 길을 나서서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전날 미리 플랫폼 위치며 소요 시간 등등을 모두 알아 두었던 동행을 보면서 그녀의 부지런함이 나 또한 조금 부담되던 터라 스스로 제동을 건 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오페라 관람에 맞춰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속도를 내기로 한다.

 

여느 대도시들처럼 빈에도 박물관이 많은데,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에서 보고 특히 관심이 간 곳이 문화복합체인 뮤제움스 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엠큐MQ. 링슈트라세에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광장을 지나면 엠큐로 인도하는 안내 표지판이 여럿 보이는데,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MQ’라고 적힌 모양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본다. 엠큐는 원래 1700년대 황실의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여 년 후 말들이 점차 줄어듦에 따라 황실은 마구간을 옮기고 이 곳을 전시장 등으로 활용했다. 이 후 1990년대 초 이곳을 문화복합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안이 공감대를 얻어 2006년 엠큐가 최종 개관했다. 말들이 거주했던 곳이라 그런지 안마당에 들어서니 그 규모가 작지 않은데 이런 공간을 온전히 문화예술로 채웠다는 것이 놀랍다. 대표적인 미술관 세 곳, 레오폴드 뮤지엄Leopold Museum, 쿤스트할레Kunsthalle Wien, 무목MUMOK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이 순서대로 있고 주변으로 건축박물관과 어린이를 위한 예술 공간 등이 있다. 또 쿤스트할레 맞은편은 콰르티어21Quartier21이라는 건물로 다양한 종류의 공방들이 있다. 특정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고 공방들만 구경하고 다녀도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복합건물이라고 하면 멀티플렉스multiplex를 중심으로 식당, 상점만 즐비한 것과 대비가 되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티켓은 각 미술관마다 따로 구입할 수도 있고 콤비 티켓Kombi Tickets이라고 해서 다양한 조합으로도 구성해 두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두 곳을 선택해 먼저 레오폴드 뮤지엄으로 갔다. 루돌프 레오폴드Rudolf Leopole 박사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레오폴드Elizabeth Leopole가 모은 작품 5,000여 점을 바탕으로 세워진 곳으로 빈 분리파Wien Secession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미술사조에 밝진 못하지만 클림트가 초대 회장이었고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에곤 실레Egon Schiele가 대표 화가이니 빈을 여행할 때 분리파는 알아 두면 도움이 된다. 빈에서 세기말이라고 하면 특별히 1900년 전후의 ‘19세기 말을 지칭하는데, 빈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기말 빈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문화적 현상이 왕실이나 귀족이 아니라 시민 계급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이다. 귀족들의 취향에 맞추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취향을 내세웠다. 이것은 곧 기득권의 후원을 포기하는 거였는데, 이러한 낡은 전통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자유롭게 전달하고자 했던 이들이 모인 예술가 단체가 빈 분리파다. 제체시온Secession이란 말은 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Secedo'에서 가져왔고 이는 과거로부터의 분리를 뜻한다. 분리파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고 간행물을 발행했는데 레오폴드 뮤지엄에서 전시회 포스터 등 그 기록들을 볼 수 있었다. 또 클림트가 평생의 정신적 연인이었다는 에밀리 플뢰게Emilie Floege에게 보낸 엽서 등 작품 외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벨베데레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림은 에곤 실레의 작품이 가장 많았는데 클림트 작품처럼 화가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내 평범한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다만 클림트와 다르게 자화상이 많아서 28세에 요절했다는 젊은 천재를 상상해 볼 수 있었는데 꽤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이었던 것 같다. 실제 어땠는지 모르지만 예사로운 눈빛은 아니었다. 솔직히 레오폴드 뮤지엄에서 가장 반한 것은 어느 특정 작품이 아니라 뮤지엄 측의 센스였다. 클림트 작품이 전시된 한 방에는 고리 모양의 의자가 있어, 앉아서 사방의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의자 중심부에는 헤드폰이 놓여 있었는데 말러의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동시대 영감을 주고 받았던 두 예술가를 동시에 만나도록 한 배려라니! 말러를 들으면서 한참을 보니 클림트가 [죽음과 삶Death and Life]에 담고 싶어한 게 무엇인지도 알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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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결정한 후 주변에서 자주 들은 질문이 (비엔나Vienna)만 가?”였다. 체코Czech, 헝가리Hungary 등을 일정에 함께 포함하는 게 동유럽 여행으로 일반적인 듯 하고 오스트리아로 한정한다고 해도 빈에만 머무는 게 보통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대상은 오스트리아가 아니었다, 물론 동유럽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와 동행의 목적지는 이었다. 회사에서 허락받은 휴가 최대치는 9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79일 빈을 여행하기로 했다. 기간에 맞춰 여행지를 추가하지도, 빈에만 머물 것이라고 해서 일정을 굳이 줄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출발을 며칠 앞두고 내 얇은 귀가 결국 외도를 시켰다. 블로거들의 칭찬이 자자한 할슈타트를 하루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이라 식사는 건너뛰고 대신 첫 날 맛있는 기억을 남긴 맥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후 기차 플랫폼으로 향했다. 공기가 찬 이른 아침의 따뜻한 커피는 언제나 옳다. 할슈타트에 가기는 빈 중앙역을 출발해 아트낭-푸하임Attnang-Puchheim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하지만 안내도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동선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초행이라도 비교적 쉽다. 창 밖 풍경을 보다가 동행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하기도 하니 3시간 30여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할슈타트는 빈과 잘츠부르크Salzburg 사이에 위치한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에 있는 호수 중 하나다. 잘츠카머구트는 알프스 산자락과 70여 개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배경이기도 했던 곳인데, 할슈타트는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로 꼽히는 곳으로 1997년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할슈타트역은 오로지 기차가 들르기 위한 작은 간이역이다. ‘이 곳이 할슈타트역입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은 ‘Hallstatt’라고 씌여 있는 간판이 전부인데, 선로를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산, 다른 한 쪽은 호수인 곳이다 보니 그 간판 하나가 정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플랫폼에서 호수 쪽으로 좁은 흙길을 걸어 내려가면 바로 건너편 할슈타트 마을로 데려다 주는 배를 타게 되어 있다. 이동 시간은 10분 남짓, 산자락 아래로 알록달록한 집들이 자리한 마을이라 호수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예뻐서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열심히 위치를 바꿔 가며 사진을 찍어 댔다. 점심 때가 다 되었으므로 우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적당한 식당을 물색했다. 당첨된 곳은 씨 호텔 그루너 바움See Hotel Gruner Baum, 입구에 들어섰는데 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어리둥절했더니 다들 호수가 보이는 테라스에 있었던 거였다. 우리도 한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오스트리아 대표 음식인 슈니첼Schnitzel과 새우오일파스타를 주문했다. 슈니첼은 돈가스 같은 건데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기 튀긴 요리가 맛 없기가 쉽지 않지 않나, 너무 짠 게 아쉬웠다. 반면 파스타는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게 정말 맛있었다. 상황과 장소가 만든 분위기 덕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한동안은 잊지 못할 맛이었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마을 구경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마을이 작아도 너무 작고, 볼거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작은 마을인 줄은 알았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열댓 걸음이면 한 골목은 끝이 나고, 이 집은 아까 본 그 집이었다. 본래 여행 중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편인데, 장소를 옮기는 것은 물론 방향도 달리 해 가며 사진도 여러 컷 담으며 다녔음에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할슈타트 관광객의 8~90%는 중국인과 한국인인 듯 했는데,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동양인들에게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만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만나는 호수 저편은 충분히 감탄할 만하지만 유럽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풍경은 종종 만날 수 있다. 많이 다녀보지 못했음에도 나는 스위스Switzerland 루체른Luzern과 이탈리아Italy 친꿰떼레Cinque Terre가 바로 떠올랐었다. 할슈타트만의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할슈타트의 ‘hal’은 소금이라는 뜻으로 소금광산이 있는 곳이라 기념품 가게에서 조금씩 다른 맛이 나도록 정제한 소금까지 종류별로 구입하고 나니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 정말 더 할 것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호수 구경을 한참, 중심가인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오가는 관광객 구경을 한참 하며 시간을 때우는데, 호숫가 근처라 바람도 꽤 있어서 몸이 으슬으슬 춥다. 제일 먼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랬었지만 몰려오는 피곤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는데 나는 편히 잠들 수도 없었다. 사실 할슈타트 여행은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기차표를 예약할 때 내가 실수를 하나 했던 것이다. 탑승객의 이름을 쓰게 되어 있는데 동행의 이름을 잘못 기재했다. 비행기도 아닌데 이름까지 대조해 가며 표 검사를 할까 싶다가도 오스트리아 철도청, Oebb 홈페이지 상의 ‘ID card를 함께 검사한다.는 주의 문구가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동행은 종일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의아해했지만 내가 아니라 나 때문에 동행 여행이 어그러질 수도 있는 거였기 때문에 나는 태평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 날 왕복 네 번의 표 검사 때 신분증을 요구한 이는 없었고, 마지막 표 검사까지 마치고 나서 나는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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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 이하 빈 필 정기연주회는 연간 10회 정도만 열리는데 여행일자와 맞았으니 우리는 운이 좋았다. 비록 좌석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동행이 아쉬운 대로 입석표를 미리 예약해 뒀다. 빈 필이 공연되는 곳은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이다. 빈 필의 홈그라운드로서 유명한 곳이지만 빈 필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연주홀이 여럿 있어 연중 비어 있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주변으로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그 탓에 예약확인증을 티켓으로 교환해 주는 창구를 찾는 데 조금 헤맸다. 다행이 공연 시간에는 늦지 않았지만 무지크페라인을 천천히 둘러볼 시간은 놓치고 말았다. '공연장이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베토벤 흉상이라도 하나 놓여 있으려나,' 아쉬운 마음에 애써 시치미를 뗀다. 연주홀에 들어가니 서 있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 입석표를 아예 팔지 않는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다시 올 날을 기약하기 힘든 우리 같은 여행객이나 입석표를 살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젊은 사람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까지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비율이 상당했다. 빈 필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해서 과감히 보기를 포기하고 한쪽 벽에 무대를 등지고 기대 앉았다. 프로그램은 모차르트 교향곡 36 C장조 (린츠)Wolfgang Amadeus Mozart Symphony [No. 36] in C major, K. 425 (Linz)브루크너 교향곡 7 3악장Anton Bruckner Symphonie Nr. 7 in E-Dur, WAB 107이었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 어떤 특징이 있는 곡인지도 알고,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지도 알면 더 좋았겠지만 전혀 모른다 해도 고전은 왜 고전인지를 알게 해 주는 감동이 있었다. 빈 필은 1842년 오토 니콜라이Otto Nicolai라는 지휘자가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단원들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오페라 반주가 아닌 독자적인 음악연주회를 연 것이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빈 필 단원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빈 슈타츠오퍼의 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타츠오퍼에서 정단원으로 3년 이상 경력을 쌓은 사람에게만 빈 필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니 연주자들의 실력 또한 의심할 것이 못 되는 것이었다. 지휘를 못 본 게 아쉬웠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저기로 시선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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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성당에서 남쪽으로 뻗은 보행자 도로, 케른트너슈트라세Kaerntnerstrasse를 천천히 구경하며 걷던 중 옆 골목을 우연히 돌아봤는데 카페 하벨카Café Hawelka 간판이 보인다. 빈에서 커피가 가장 맛있는 집으로 통한다는 그 집이다.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빈의 유명한 카페들을 여럿, 대략 열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 박종호 씨가 그 중 가장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미진 골목에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언급이 있어 사실 일부러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쉽게 발견되다니! 당연히 가던 길을 멈추고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한다. 커피 애호가인 동행의 동의를 구하기는 식은 죽 먹기, 그녀도 당연한 듯 골목으로 걸음을 옮긴다. 내부는 약간 어둡고 뭔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 벽에는 각종 예술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입구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는 신문철이 여럿 놓여 있다. 빈 시민들은 카페에 와서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 카페마다 신문은 꼭 있다고.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이 곳은 빈 카페의 공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은 우리뿐, 앉아 있는 손님들의 분위기도 내가 지금 빈에 있구나를 새삼 느끼게 한다. 박종호 씨의 추천을 따라 브라우너 커피를 주문했다. 우리로 치면 커피에 크림을 약간 탄 것이다. 커피와 함께 크기가 다른 물 잔이 둘 나왔는데 이건 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같은 크기의 물 잔이 다 떨어진 때문 같았다. 카페 하벨카는 빈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공간이고 싶어 하는 곳이라 관광객에게 친절하지 않다고 하던데, 이 경우만 봐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격식 차리는 곳은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브라우너의 첫 맛은 약간 쓰다. 한국에서는 커피에 설탕이나 시럽을 전혀 넣지 않지만 여긴 빈이니 빈 사람들을 따라 각설탕을 하나 넣었다. 살짝 단 맛이 얹혀지니 커피가 제대로 맛있다. 함께 주문한 치즈케이크는 내가 상상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치즈에그소로 속을 채운 페이스트리와 더 비슷했는데, 커피와 함께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카페 하벨카 골목을 빠져 나오니 어디선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린다. “이런 번화가에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동행이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동시에 깨달은 것은 연주가 라이브라는 것이었다. 길 한복판에서 한 동양인 여성이 실제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간 여러 종류의 버스커busker들을 봤었지만 피아노 연주자는 처음이다. 피아노 옆면에 'SoRyang'이란 글자가 보여 검색하니 그녀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16세에 서울을 떠나와 독일 엣센 폴크방 국립음악대학FOLKWANG-Musikhochschule in Essen을 졸업했으며 그 후에 빈으로 건너온 한국인 피아니스트였다. 세계 유명 공연장에서 연주한 경력도 화려하고 발표한 음반도 여러 장이지만 무엇보다 거리 연주자로 유명하고,[각주:1] 유튜브YouTube에서 조회되는 연주 영상도 상당했다. 실력은 인터넷이 알려 준 그녀의 이야기가 지나친 칭찬이 아니라고 할 만한 것이어서 한동안을 넋을 놓고 감상을 했다. 이런 것이 여행 중 만나는 뜻밖의 행운일 것이다. 이 여행을 나만의 여행으로 기억되게 하는 조각 하나가 보태졌다.

  1. 발표한 음반 중에는 ‘Vienna. Street live. SoRyang in concert’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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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지도를 보면 시가지를 둥그렇게 둘러싼 도로가 있다. 마치 서울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데 그 이름도 환 도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이다. 19세기 말 투르크 군대를 막아내기 위해 빈 시가지를 둘러쌌던 성곽을 해체하고 만든 도로라고 한다. 도로가 건설될 때 주변으로 슈타츠오퍼Staatsoper국립 오페라극장,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 haus 등 주요한 건물들이 한꺼번에 세워져 지금의 빈을 상징하고 있는데, 도로 한가운데에는 슈테판 성당Stephansdom이 있다. 유럽 여행을 처음 했을 때는 고대 성당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여러 번 보다 보니 모자이크 성화나 스테인드글라스는 웬만해선 감흥이 일지 않는다. 슈테판 성당 내부도 매우 화려했지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그러나 외양은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었는데 건물이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아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고딕 성당에는 쓰일 것 같지 않은 기하학적 디자인의 지붕이 특이했다. 이 지붕은 10가지 색의 타일로 만들어졌는데 약 23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색 타일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그 길이가 51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내가 매일 버스로 한 시간씩 출퇴근하는 거리를 모두 채우고도 남는단 얘기다.

 

나에게 빈의 첫 번째 연관어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아니지만, 모차르트가 빈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것은 분명하다. 마침 성당으로 오는 길에 모차르트하우스Mozarthaus Vienna 이정표를 봤던 터라 자연스럽게 그 곳을 찾았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Constanze Mozart가 두 자녀와 함께 살았었다던 아파트다. 이 곳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기에 피가로하우스라고도 한다. 각 방마다 살았던 당시 모습을 담아 내면서 악보, 친필 편지 등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 두었다. 전시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되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설명 사이사이 자료와 연관된 그의 음악을 들려 주어 정서적 공감도 되었다. 모차르트의 생가라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을 것인데, 그들에게 그를 음악으로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모차르트를 경외하는 방법은 아닐까 생각했다.

 

모차르트하우스 관람을 마치니 오후 2 40분쯤 되었다. 매일 오후 3시에는 성피터 성당Katholische Kirche St. Peter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한다. 슈테판 성당 근처라고 했으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돔 지붕이 눈에 띄긴 하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소박한 외형에 비해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장식이 유럽 여느 대성당에 뒤지지 않는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성당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니 성당 구경에 각국의 언어들이 섞여 시끄럽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 모두 하던 말을 멈추고 연주에 집중한다. 눈을 감고 등을 편안히 기대고 그저 귀만 열어 둔다. 아침에 호텔을 나선 후로 점심도 거르고 다닌 터라 지치려 할 쯤이었는데 이러한 쉼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적지만 5유로 봉헌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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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처음 마주한 것은 앙커Ankeruhr 시계다. 직접 보기 전 시계에 대해 내가 가진 정보는 매 시 정각에 사람이 나온다.’가로본능이다였다. 솔직히 후자는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없었고 전자에 대해선 뻐꾸기 시계를 상상했었다. 실체를 보니 나의 상상력은 얼마나 빈약했던지. 시계는 가로방향으로 눈금이 있고 그 눈금을 따라 분침이 된 등장인물은 1분에 한 번씩 앞으로만 움직여 시간을 나타낸다. 매 시 각기 다른 인물들이 나오는데 12시 정각에는 시계에 있는 모든 인물들이 음악에 맞춰 돌아가며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벨베데레에서 나온 시간이 이미 12시가 넘었었으니 아쉽게도 12명의 인물행진은 놓칠 수밖에 없었고 1시에라도 맞추려고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걸음을 서둘렀다고, 나중에 동행에게서 들었다. 나는 그런 줄은 모르고 그저 동행을 열심히 뒤따른 덕에 정말 딱 1시에 맞춰 도착했는데, 허탈하게도 시계가 10분 늦게 가고 있었다. 랜드마크가 되는 시계가 시간이 안 맞다니, 이건 좀 실망이다. 아무튼 그래서 1시의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을 보려면 12시의 인물이 열 걸음 가시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10분은 많이 긴 시간이었다. 그 분의 걸음이 느린 걸까, 느리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조급한 걸까. 12명의 인물이 각기 누구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잠깐이라도 삶의 속도를 고민하게 해 주신 12시 그 분은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이었다. 여행 후반, 생각지 않게 하이든하우스Haydnhaus를 방문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보다 먼저 만났었던 셈이다. 교향곡의 아버지, 미처 몰라 뵈어 죄송했습니다”.

 

앙커 시계를 아치로 해서 연결된 두 건물 중 오른쪽이 호에르 마르크트Hoher Markt. 빈 역사지에도 옛 시장Die Alte Markt이라고 소개되었듯이 과거에도 중앙 시장이었던 이 곳은 현재는 머쿠어Merkur 브랜드의 식료품 마트이다. 1층은 청과, 2층은 각종 가공식료품, 3층은 육류와 해산물 등등 정말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들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너무나 선명한 과일 빛깔에 반하고, 요리에는 정말 소질이 없어서 막상 어쩌지도 못할 재료들을 앞에 두고 맛있겠다.”를 연발했다. 과자, 초콜릿 코너에서는 정말 천국이다 싶었으니 여자 여행객들에게는 인기가 좋겠다.

 

호에르 마르크트는 한국인들에게 조금 더 알려져 있는데, 3층에 킴코흐트Kim Kocht 분점이 있어서다. [마스터세프 코리아Master Chef Korea]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었던 김소희 세프의 식당인데 나는 그 프로그램을 단 한 번도 시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느낌은 없었다. 굳이 그 곳에서 식사를 하지도 않았다. 다만 코흐트kocht라는 단어가 괜히 반가웠다. 벨베데레에서 그림을 보던 중 제목에 이 단어가 쓰인 게 있었었다. 요리사가 그려진 작품이었는데 요리하다라는 뜻의 코흔kochen의 활용형이라고 동행이 가르쳐 줬었다.[각주:1] 킴코흐트는 김씨가 요리하다,’ 또는 김씨 요리사정도의 뜻이 된다. 순간 김밥 체인점, [김가네]가 떠올라서 혼자 피식.

 

 

  1. 동행은 과거 독일어를 공부했던 이력이 있다. 여행 중 종종 나의 독일어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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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때문인지 여러 번 잠을 깼다. 아니다, 새벽에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 탓이다. 이도 결국 시차로 인해 그 시간에 걸려 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휴가 중 업무 전화는 무조건 나쁘다. 결국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5시쯤 일어나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낯선 곳에 가면 성경 말씀 한 구절이라도 보고 하루를 시작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평소 안 하던 걸 하는 건데, 이런 날라리 크리스천의 기도도 들으실까 하다가도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속이 좁으신 분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로 했다. 예약한 숙박권에는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원한다면 비용을 따로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전날 저녁식사를 거르기도 했으니 든든히 먹기에 좋고, 만약 만족도가 높다면 머무는 동안 종종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12유로의 싸지 않은 가격에 비한다면 평범한 서양식 뷔페였기에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처음 간 곳은 벨베데레Belvedere. 벨베데레는 1683년 빈을 침공한 투르크 군대를 무찔러 전쟁 영웅이 된 오이겐 공Prinz Eugen이 지은 여름 궁전인데, 오이겐 공이 죽자 이 궁전을 합스부르크가에서 구입해 그들의 미술 소장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도 무너지고 궁전은 지금 오스트리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립 미술관이다. 궁전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상궁과 하궁, 두 건물로 나뉘어져 있는데, 상궁은 19, 20세기의 근대 회화를, 하궁은 중세에서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키스Der Kuss]로 대표되는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들이라니 우리도 대세를 쫓아 상궁 관람을 했다.

 

벨베데레는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를 읽고 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저자가 가장 감동하는 작품이라고 하는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오감五感 Die Funf Sinne]은 과연 그럴 만하였는데, 인간이 느끼는 감각, 즉 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을 표현하고 있는 다섯 여인들의 몸짓은 빨간 벽지와 너무 잘 어울려 시선을 잡았다. 가장 관심이 갔던 화가는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였다. 그는 초상화에 거의 모두 인물의 손을 그려서 얼굴뿐 아니라 손의 표정을 강조하고 또 인물이 아닌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2인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니, 그의 초상화들은 걸음을 멈추고 한 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알마 말러Alma Mahler와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예술가로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여인이라 하는데, 많은 연애 행각 중 특별히 각기 음악, 건축, 문학, 미술의 대가들인 말러Gustav Mahler,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베르펠Franz Werfel, 코코슈카에게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넷 모두 죽을 때까지 그녀를 품고 살았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말러의 음악은 좋아할 수가 없었고, 그로피우스의 건축은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베르펠의 소설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코코슈카의 그림에는 늘 감동을 받았다."

만년에 그녀는 네 명의 남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술회했다고 하니, 코코슈카가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렸다는 [바람의 신부The bride of the Wind]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 곳에서 볼 수가 없었다. 도통 찾을 수가 없어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다른 곳의 전시를 위해 옮겨져 있다고 한다. 언젠가 나와 연이 닿을 날이 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클림트의 방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어린이 단체 관람객도 있었는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이가 클림트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우연히 들으니 그의 황금시대그림들은 실제 금이 사용됐다고 한다. 다시 보니 [키스]는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다. 벨베데레에서, 아니 빈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클림트는 사실 빈 곳곳에서 기념품 폭격으로 만난다. 흔한 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법, 그래서 오히려 감흥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었다. 진짜 금이 내는 빛은 사진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림 얘기를 하다 보니 이제서야 말하게 되었는데, 시간상으로 상궁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1층의 기둥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곳은 귀족들이 사용하는 1, 우리가 생각하는 2,의 아래층으로 하인 계급이 쓰던 곳이라 층수에서 제외되기에 1층이라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아래층, 하인들,의 기둥들은 고통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윗층,귀족들,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사실적인 묘사라니!’라는 놀라움을 넘어서는 건 이런 조각이 당시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라는 설명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러한 차별이 당연하게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벨베데레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도 있었다.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산책한 정원에는 연못을 빙 둘러 각종 동물 머리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하나하나 보니 십이지 동물들이었다. 유럽에서 십이지라 너무 의외였는데,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 Wei 특별 전시의 한 작품이었다. 작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그 반대의 경험도 했다. 상궁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또 다른 중국 현대 미술가, 얜페이밍Yan Pei Ming, [예수 수난도]는 실제 십자가상 대신 그림을 걸어 놓고 제단을 꾸며 놓았다. 금속 촛대 위에 붓질 느낌이 적나라한 회화는 이질감이 강해 오히려 인상에 남았는데,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그린 중국인이 많이 생경했다. 예술품을 감상하기에 편견 그득한 나를 발견한 듯 하여 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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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빈에 도착했다. 빈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표 자동발권기를 한 번에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과 호텔을 찾아 한 두 골목을 헤맨 것은 빈에서의 설레는 첫 걸음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길은 헤매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은 반으로 설렘은 배로 만들 수 있다. 호텔은 중앙역Hauptbahnhof에서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이다. 사람마다 호텔을 선택하는 기준은 제 각각이다. 편의시설일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일 수도 있다. 맛있는 조식이 중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교통 관점의 위치가 일 순위다. 나의 육중한 캐리어가 현지인의 출퇴근길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 다시 말하면, 캐리어 끌고 시내교통은 이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번 여행의 경우, 호텔 선택은 간단한 편이었다. 빈에만 쭉 머물 예정이었으므로 빈 국제공항과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곳이면 되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 보면 도시 간은 물론, 특히 유럽의 경우, 나라 간 이동도 잦다. ‘짐은 최소한으로를 굳게 지켰다 할 지라도 계단을 오르내리기에 캐리어는 꽤 무거울 것이며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은 생각보다 많다. 무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의 거추장스러움은 답이 없다. 게다가 나는 내가 2번 플랫폼으로 가야 하는지, 5번 출구가 맞긴 한데 그 5번이 어느 방향인지 잘 모르는 여행객이다. 바쁜 현지인들에게 나는, 나와 함께 한 자리 차지한 캐리어는, 정말 거추장스럽지 않겠는가.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는 비행 중 두 번의 기내식은 소화가 됐을 리 만무했다. 저녁식사는 거르고 호텔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일주일뿐이지만 내가 머물 공간이므로 주변 환경을 익힐 필요도 있다. 중앙역이다 보니 역사가 꽤 크다. 푸드코트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팔고 있고 동행 말로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는 오스트리아 브랜드의 빵집도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니 꽤 규모가 있어 보이는 슈퍼마켓도 있는데 문을 닫았다. 마침 일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은 것인데 평일에는 밤 11시까지 운영한다고 하니 머무는 동안 유용하겠다. 자세히 보니 1층에 별도의 작은 매장이 있는데 그 곳은 영업 중이라고 하니 호텔로 돌아가기 전 들러보면 되겠다. 날은 제법 어둑해졌고 9월 빈의 저녁은 조금 쌀쌀했다. 맥카페Mc cafe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에 온기를 채우며 비행의 여독을 달랬다. 박종호 씨가 커피가 없는 빈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할 만큼 커피로 유명한 빈이라는데, 빈에서의 첫 커피가 맥카페라니, 여행지의 낭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날의 커피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었던 커피였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하루에 두 세 잔은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애호가이나 믹스커피부터 핸드드립까지 가리지 않는 싸구려 입맛인 탓이겠지만, 커피 맛이 어디 커피 자체에서만 오냔 말이다. 그 날 커피 맛의 9할은 빈의 공기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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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행을 간다. ‘가 풍기는 것은 반복이 주는 지루함 같은 것인데 여행과 만나면 그렇지가 않다. 장소가 바뀌고 때가 다르며 여행자도 전과는 완전히 같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쓰려는 것은, 몇 번의 여행 중 특별히 2016년 이른 가을 내가 오스트리아Austria의 수도, Wien을 여행한 이야기이다.

 

처음 혼자 배낭여행을 했던 기억과 비교하면 나의 여행 패턴은 꽤 달라졌다. 계획이 줄고 여행지에 나를 그냥 던져두게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상황이 그랬다.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는 직장인인 탓에 계획을 세울 여력이 없었다. 다음은 경험적인 이유다. 여전히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행 경력이 쌓이면서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오지가 아닌 한 정보는 널렸고,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짧은 기간 머무는데 필수품일 리 없으며, 국제 미아가 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지막은 내 의지다. 모름지기 계획이라 함은 앞으로의 일을 미리 헤아려 정함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짜 놓은 계획이 감동까지 미리 정하는 것은 아닐까. 계획 덕에 빈틈 없는 여행일 순 있겠지만 어느 빈틈은 나에게 감동의 순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러 계획을 덜 하려고 한다.

 

이번 여행도 비슷했다. 일요일 오전 출발인데 토요일 오후까지 회사에 붙잡혀 있었고 손에 쥔 것이라곤 항공권, 호텔예약번호, 햘슈타트Hallstatt 왕복기차표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전날까지 너무 부산해서였는지 걱정도 되지 않았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여행이 실감됐다. 긴장감과 설렘이 섞인 묘한 감정이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동행을 만났다. 

 "함께 여행을 떠날 이는 진지하지 않고, 심각하지 않고, 질척거리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예민하지 않고, so cool하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하고, 배려심 많고, 그렇지만 이런 성격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잡지 [페이퍼Paper]에서 본 누군가의 여행지기론인데 격하게 공감한다. 나의 동행은 처음 만난 지 곧 20년이 되는 오랜 친구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둘이 너무 닮았거나 또는 너무 달라서가 아니라, 어딘가는 비슷하고 어딘가는 다른데 서로 그냥 그렇구나.’ 해서였다고 생각한다. 함께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저 여행지기론에 부합한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저런 여행지기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설사 다툼이 생겨 중도에 서로 헤어지게 될 지라도, 그 결론은 그냥 그렇구나.’일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마침 목적지가 맞았을 뿐, 함께 가게 된 것이 우리 둘이 꼭 같이 여행가자도 아니었으니, 그 믿음이면 충분했다. 장치는 하나 두었다. 호텔은 각자 방을 따로 잡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여행가서는 꼭 싸운다.’라는 명제가 너무 두려운 이들에게는 작은 팁이 될 수도 있겠다. 혼자인 내 방에서는 질척거려도 되고, 예민해도 되고, 게다가 그 모든 더러운 성격을 다 드러내도 무려 괜찮다.

 

비행 중에는 책 [비엔나 칸타빌레]를 읽었다. 앞에 말했던 이유로 계획을 줄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이드북은 보지 않는다. 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 연이 닿으면 좋고, 보통은 여행에세이 한 두 권 읽고 가는 편이다. [비엔나 칸타빌레]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과 브람스Johannes Brahms를 테마로 하여 음악평론을 겸하고 있는 방송 작가, 유강호 씨와 피아노를 전공한 여행 작가, 곽정란 씨가 함께 쓴 유럽 5개국 음악 기행문이다. 솔직히 고백을 하겠다. 나는 베토벤과 브람스를 알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과 이 여행을 통해 조금, 아주 조금이겠지만, 알게 된 것 같다. 읽고 간 또 한 권의 책은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오페라 평론가로 활동하는 박종호 씨의 에세이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이다. [비엔나 칸타빌레]가 나를 빈의 음악으로 안내했다면,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에서는 빈의 미술 세계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미 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 빈이지만 그 정도는 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두 권의 책 덕분에 그나마 그 진짜 맛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문학미와 예술미는 훈련을 통해서 커져가고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유홍준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교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하면서 매번 하게 되는 반성인데, 평소에 열심히 보고 듣고 공부해야 한다.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에세이를 찾아 읽는 건 여행 직전 단기 속성 코스를 밟는 셈인데, 언젠가 여행을 위해여행서적을 읽지는 않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란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탓에 앞으로 언급되는 배경 지식의 많은 부분이 앞의 두 권의 책에서 참고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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