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먹어야겠는데 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이 호프부르크 궁에서 멀지 않다. 빈 사람들에게 카페는 2의 집이라 할 만큼 일상의 공간이라 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카페가 흔하고 유서 깊은 곳도 여럿이다. 1873년 문을 연 카페 란트만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곳은 배우들의 카페’, ‘정치인들의 아지트’, 등으로 불렸는데 주변 환경을 보면 이해가 쉽다. 카페 란트만은 부르크 극장Burg theater 바로 옆에 있는데, 이 극장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지역을 처음 개발할 때 지금의 라트하우스플라츠Rathausplatz시청 광장인 큰 지역을 가운데에 비워두고, 주위 네 개의 건물이 서로 마주 보도록 계획했다. , 서쪽에는 시청을 배치하고 맞은편에 부르크 극장을, 또한 남쪽에는 국회의사당을 세우고 북쪽에는 빈 대학을 지었다. 이렇게 사각형의 네 변을 차지한 건물은 각각 행정, 입법, 학문, 예술을 의미한다. 보통은 시청이나 국회의사당이 중앙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구성을 한다 해도 예술이 나란히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흔치는 않아 보인다.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답다. 그렇게 세워진 부르크 극장에서는 최고의 연극이 공연되고 배우들뿐 아니라 연출가, 작가들은 카페 란트만에서 작품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카페 란트만은 나머지 세 축의 정치가와 학자들에게도 담론의 장소일 것이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조식을 즐기는 손님들이 많아 보였다. 빈의 카페들은 대부분 커피와 디저트뿐 아니라 식사도 가능한데 아침에는 빵과 햄, 치즈, 등의 기본적인 메뉴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침 겸 점심이 되어야 하니 제대로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여행객 정체성에 충실하게 이 곳의 대표 메뉴로 주문했다. 아펠스트루델Apfelstrudel, 여러 겹의 페이스트리에 사과를 넣은 일종의 애플파이다. 커피는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크림이 없는 멜랑주Melange를 시켰더니 아주 잘 어울렸다. , 빗방울이다. 비를 피해 자리를 옮겨 앉았다. 통유리로 천장과 외벽을 꾸민 반실외 공간이다. 비가 유리에 부딪쳐 내는 소리와 자국이 예쁘다. 여행 내내 하늘이 맑아서 감사했는데 돌아가는 날 처음 내리는 비는 그것대로 좋다. 옆 테이블에는 부자로 보이는 이들이 앉았는데 아들이 먹고 있는 아펠스트루델이 우리 것과 조금 다르다. 메뉴판을 다시 보니 아펠스트루델은 그냥 나오기도 하고 커스터드를 함께 주문할 수도 있는 거였다. 커피, 디저트, 식사 등 메뉴판이 여러 종류인데 우리가 처음 앉았던 자리에는 아마도 이 메뉴판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배는 이미 부르지만 너무 맛있어 보여 과감히 추가 주문했다. 비와 커피와 뜨거운 커스터드를 입은 파이, 빈에서의 마지막 식사도 만족스럽다.

 

카페 란트만을 자주 찾은 명사들은 한 둘이 아니지만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가장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진료를 마치면 그의 병원에서 30분이면 걸어 올 수 있는 이 곳으로 와서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진료실의 의사와 카페의 손님은 비슷할까, 또는 전혀 다를까 궁금해 지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병원은 박물관Sigmund Freud Museum으로 이름 붙어 개방 중인데, 멀지 않다고 하니 정신분석학에도 호기심이 있다는 동행은 그를 놓치고 가면 안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일반적인 주택가 골목이지만 빨강 바탕에 ‘FREUD’의 흰색 글자가 크게 쓰여 있어 찾기에 쉬었다. 진료를 보듯 방문객들을 수에 제한을 두고 입장시키고 있었는데 동행은 순서를 기다리는 것마저도 설레는 것 같았다. 여행이 끝에 오다 보니 나는 또 뭔가를 집중해서 보는 것이 내키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동행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더는 지체 없이 공항을 향해야 한다. 이 때쯤, 그러니까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드는 생각이 그 여행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못 본 것 같아 짧은 기간이 아쉽기만 할 때도 있고, 어느 한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한 번 다시 재회하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그저 얼른 집에 도착하길 바랄 때도 있다. 프로이트 병원 앞 벤치에 앉아 든 생각은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거였다. 지극히 평범한 거리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도 아니어서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조용했다. 일주일 빈에 있었을 뿐인데 이 보통의 빈이 이렇게 익숙할 수 있나 싶었다. 재력과 여력이 된다면 좀더 길게 머물러도 좋을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음 움직이는 대로 가다 말다가 될 것 같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그림이 보고 싶으면 미술관을 찾고, 공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종일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오페라 극장으로 향할 수도 있다. 빈은 이런 휴식을 위한 최적의 도시 같다. 미술관과 극장이 많기도 하지만 특정 장소가 아니어도 어딜 가나 예술을 접할 수 있고 뚜벅이들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교통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도 아니어서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살고 싶다.’는 아닌데 한 달쯤은 지루함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도시, 내가 느낀 빈이다. 동행이 만족한 표정으로 나왔고 우리 빈 일정은 모두 끝났다. 나중 언젠가 한 달쯤 빈에 머무는 호사를 누릴 날을 감히 기대해 본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