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을 떠나는 날이다. 우리의 계획된 마지막 일정은 궁정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 다니고 동행은 가톨릭이니 여행을 떠나 왔어도 주일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매 주일 궁정성당 미사는 빈 소년합창단Wiener Saengerknaben이 성가를 부른다. 세일러복을 입고 천사의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그 빈 소년합창단 말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빈 소년합창단은 1498년 황제에 의해 창설되어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시 미사는 여성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를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들에게 맡겼다. 난이도 높은 성가를 소화하기 위해 합창단원들은 합숙 생활을 하면서 음악 훈련을 받았다. 1918년 독일 사회민주혁명으로 한 때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24년 다시 조직된 이후 미사나 종교 행사 외에 일반 음악회 공연도 하기 시작했다. 21~25명으로 구성된 4개 팀이 있어, 한 팀은 빈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또 한 팀은 연주회를 준비하며, 남은 두 팀은 해외 순회 공연을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지만 합창단의 존재 이유이자 여전히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성가대로서 그들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임에 틀림 없다.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호프부르크 궁Hofburg으로 향했다. 호프부르크는 1220년경에 처음 세워진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 빈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지만 우리는 궁전 구경은 따로 하지 않고 미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 직진했다. 제대로 찾은 게 맞을까, 분명히 우리 같은 관광객이 많을 듯 한데 이렇게 아무도 없을 수 있을까, 의심을 품은 채 건물로 들어섰고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맸다. 다행히 전혀 엉뚱한 곳을 헤맨 것은 아니었는지 잘 당도하였는데 도착해 보니 정문은 우리가 들어선 입구 반대편이었다. 역시 그 곳은 사람들이 많았다. 정기적으로 드리는 미사이므로 별도의 입장료는 없지만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자리는 가격의 차이를 두고 예약을 받는다. 앞의 빈 필과 오페라처럼 이번에도 동행 덕을 보았다. 2층 사이드 맨 앞자리였는데 몸을 조금만 구부리면 제단도 잘 보이고 무엇보다 소년들이 자리한 곳이 2층 뒤편이었기 때문에 힐긋 노래하는 모습을 훔쳐 볼 수도 있었다. 가톨릭 미사는 처음이었다. 기독교도 예배 절차가 간단하지 않은 편이지만 가톨릭이 좀더 복잡하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생소한 의식들이 많은 듯 했다. 낯설었지만 형식이 만들어내는 경건의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예배가 라틴어로 진행되어 정말 중세 시대에 온 기분이었다. 몇몇 기도문의 독일어 번역판까지 준비했던 동행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었지만 라틴어 예배는 동행에게도 새로운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소년합창단의 성가였다. 곡은 모차르트의 F 장조 미사곡Missa brevis, F-Dur, KV192 ‘’Kleine Credo-Messe이었다. ‘청아하다라는 단어는 이런 때에 쓰는 거구나 싶었다.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 전 세계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알았지만 동양인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웠다. 연예인 만드는 엄마들보다 극성의 수준이 배는 더 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 미사가 끝나자 소년들이 제단 앞으로 나와서 한 곡을 더 부른다. 합창단을 보러 온 관광객들을 위한 성당 측의 배려라고 한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냈다. 팬 서비스에는 팬다운 반응을 보여야 하는 법, 예쁜 소리 잘 담겠습니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