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재미 없기가 쉽지 않은 장소다. 벼룩시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 나슈마르크트Naschmarkt에는 매주 토요일 벼룩시장이 열린다. 본래부터 자리하고 있는 각종 식료품점과 식당 골목만도 규모가 꽤 크고 그 뒤로는 오만 잡동사니가 있다. 어디 쓸 데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지만 눈요깃감으로는 손색이 없다. 그릇을 파는 곳이 여럿 있었는데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것도 있지만 간혹 새 것처럼 깨끗한 것들도 있다. 밝은 원색의 기하학 무늬가 예쁜 도자 다기는 욕심이 나기도 했는데 한국까지 무사히 가져갈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전자 용품을 늘어놓은 좌판도 보인다. 과연 동작을 하긴 할까 싶은데 간절히 필요한 물건에 눈이 가는 법, 서비스 센터에서 규격이 맞는 어댑터를 구하지 못했던 동행은 모양도 다양한 어댑터 바구니를 뒤적거리기도 한다. 내 걸음을 잡은 것은 구석 넓지도 않은 공간에 늘어져 있었던 장신구들이었다. 수가 많진 않았지만 눈에 뜨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것저것 고르다 큐빅 팬던트 목걸이와 하트모양 비즈를 여러 개 엮은 팔찌로 최종 낙점했다. 5유로,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흥정이 빠지면 심심하니 깎아 줄 수 없는지 물었는데 흔쾌히 둘을 8유로에 주겠다고 한다. 2유로가 큰 돈은 아니지만 뭔가 굉장히 싸게 득템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시장이 또 좋은 것은 군것질거리가 많다는 것, 우리는 오스트리아 전통 디저트라고 하는 젤튼zelten을 사 먹었다. 소가 들어있는 빵인데 적당히 딱딱한 빵의 질감과 부드러운 소가 잘 어울렸다. 시장에 막 도착했을 때보다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활기가 넘치는 시장을 빠져 나와 케른트너 거리로 갔다. 목적은 자허 토르테Sacher Torte였다. 자허 토르테는 빈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먹어봐야 한다는 카페 자허Café Sacher의 케이크이다. 시장에서 젤튼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호텔 카페의 케이크라니, ‘체험 극과 극같지만 빈에 머무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다음으로 미룰 수 없었다. 빈에서 마시는 비엔나커피도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함께 주문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였다.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는 것은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 비엔나커피라고 하는 것은 아인슈패너Einspaenner로 커피 위에 휘핑크림이 함께 나오는데 얹는 수준을 넘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몰랐던 게 아닌데 나는 왜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이것을 주문했을까 자책했다. 자허 토르테는 초콜릿 케이크라는 본질에 충실하게 달았다. 너무 맛있지도, 그렇다고 실망할 맛도 아니었지만 아인슈패너와 어울리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더 미룰 수 없는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쇼핑, 다른 것은 몰라도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동행과 내가 확실히 일치하는 점이었지만 여행을 떠나온 이로서 지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쇼핑이 필요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빈에 다녀왔다는 기념이 될 법한 것들로 골랐다. 보통 회사 동료들을 위해서는 면세점 초콜릿으로 대신 했었는데 이번엔 오스트리아 과자인 마너Manner를 돌릴 것이다. 꼭 챙겨야 할 사람들 것만 샀는데도 부피가 제법 된다. 괜스레 짐을 잘 쌀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해서 호텔로 가서 돌아갈 준비를 먼저 했다.

 

마지막 밤이다. 빈을 열심히 걸었던 헌 운동화를 포함하여 버릴 것은 빼고 그 자리는 빈에서 구입한 물건들로 채웠다. 돌아갈 짐을 꾸려 놓으니 이제 정말 아쉬워지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묶고 있는 호텔 카페에서 동행과 맥주 한 잔으로 마지막을 기념했다.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빈을 기억할 것 같은지 얘기했다. 또 여행 중 속상한 것이 있지는 않았는지, 서로에게 말 못한 채 화가 난 순간은 없었는지도 묻고 답했다. 그리고 빈을 거니는 동안 나의 동행이 되어 주어 고마워’, 짧은 메시지와 함께 벼룩시장에서 득템한 팔찌를 동행에게 건넸다. 팔찌를 고를 때 비즈가 몇 개인지 세더니 묵주라고 알려 주었었다. 모른 채 내가 팔찌로 찼을 수도 있겠지만 가톨릭인 동행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또한 전하고 싶었다. 언젠가 둘의 마음이 또 같은 곳을 향할 때 서로에게 기꺼이 동행이 될 수 있을까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