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에로이카하우스는 연이 닿지 않았지만 테스타멘트하우스Testamenthaus유서의 집은 운이 맞아 연이 된 경우였다. 이름처럼 베토벤의 유서가 있고 그 외에도 그의 죽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있는 곳이라 꼭 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보수 때문에 임시 폐관 중이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심심찮게 보였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폭풍 검색을 하다 얻은 희소식은 보수 후 10 1일자로 재개관한다는 것이었다. 10 2일 비행기로 빈을 떠나는 일정이었던 우리에게 선물 같은 날짜였다.

 

테스타멘트하우스는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edt에 있다. 빈 북서쪽 교외에 있는 지역으로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까지 간다. 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는데 오히려 박물관에는 우리처럼 재개관일을 맞춰 방문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 곳의 유물은 여느 음악가의 박물관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친필 악보도 있고 베토벤의 작품을 들어 볼 수 있는 오디오 시설도 있다. 그러나 이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데스마스크였다. 살면서 숱하게 보아 온 베토벤의 얼굴은 조금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센 모습이다. 그런데 그의 데스마스크는 양볼이 움푹 파였고 입은 힘없이 다물고 있다. 너무 초라해서 위대한 음악가의 것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상이었다. 함께 전시된 베토벤의 유서는 내용이 짧지 않고 글씨도 또렷하다. 그는 유서를 여러 통 썼었다고 하던데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던 그는 어떤 마음으로 유서를 썼었을까 생각해 본다.

 

베토벤은 20대 후반 청력에 이상이 생겼고 의사의 처방으로 요양차 이곳, 하일리겐슈타트에 왔다. 이곳에는 베토벤이 즐겨 걸은 길이라 베토벤강Beethovengang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한 산책로가 있다. 작은 시내가 흐르고 나무가 많아서 제대로 숲 분위기를 낸다. 난청 치료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요양의 장소로는 최적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영감을 받기도 할 것이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e), Op. 68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놀라운 것은 당시 베토벤은 들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들리지 않는 대신 나머지 감각으로 숲을 느끼고 그것을 실제보다 더 생동감 있게 음악으로 옮긴 것이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바람에 잎이 흔들리고 새가 우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서는 들을 수 없음에 괴로웠을 것이다. 그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은 진부하지만 반복할 수 밖에 없었고 그의 고통을 짐작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하일리겐슈타트는 호이리게Heurige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호이리게는 그 해에 나온 새 포도주를 말한다. 문에 소나무 가지가 걸린 곳이 호이리게를 취급하는 주점인데 워낙 많다. 인기가 있어 보이는 한 집으로 들어갔더니 제대로 골랐는지 예약 외 손님은 받을 수 없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근처 아무 집으로 갔다. 아무데로 간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을까, 호이리게는 시큼하기만 할 뿐 정말 맛이 별로였다. 포도 넝쿨로 꾸며진 테라스가 운치는 있어 보였지만 깔끔하지는 않아서 딱 한 잔만 마시고 나왔다.

 

빈에는 훈데르트바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앞서 얘기한 두 곳 외 한 군데 더 있다. 슈피텔라우Spittelau쓰레기 소각장 겸 열 발전소다 하일리겐슈타트를 오가는 길에 지나는 위치여서 시내로 돌아갈 때 들렀다. 금테를 두른 굴뚝이 높게 솟아 있어 바로 찾을 수 있다. 벽면은 체스판 모양의 바탕에다가 알록달록한 창문들로 꾸며졌다. 일반적인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이곳은 훈데르트바서의 손을 거쳐 어린이 테마파크 같은 외관을 갖춘 자연친화적 소각장으로 바뀌었다. 실제 여기는 빈 시내 쓰레기의 3분의 1을 소화하면서도 배출하는 다이옥신 양은 1년에 0.1그램 정도라고 한다. 쓰레기 소각장이라고 하면 님비NIMBY 현상부터 염려되는데, 친환경적인데다 이렇게 멋지고 예쁘다면 오히려 반길 것이다. 훈데르트바서 같은 예술가가 있는 빈이 부러웠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