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훈데르트바서 때문에 빈을 찾았다면 동행의 이유는 베토벤이었다. 빈은 베토벤 외에도 많은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도시라 동행의 여정은 주로 그들의 흔적을 쫓는 쪽이었다. 그리고 여행 중 어느 날, 우리는 그 흔적들의 종착지 같은 곳으로 향했다.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곳, 첸트랄프리드호프Zentralfriedhof, 중앙공동묘지다.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지루하진 않았다. 창 밖으로 전형적인 교외의 아침 풍경, 낮고 아담한 건물과 조용한 거리,를 보고 있으니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이 죽은 영혼들을 마주할 마음가짐을 준비할 수 있어 고마웠다. ‘fried’평화, 자유를 뜻하고 ‘hof’궁전, 저택을 말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묘지를 평화와 자유를 위한 안식처라는 뜻에서 프리드호프라고 부른다고 한다. 묘지 제2문에 들어서면 길 끝에 성당이 보이고 양 옆으로 구획된 묘역들이 있다. 32구역, 음악가의 묘역이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1874년 첸트랄프리드호프가 개장했을 때, 시 당국은 빈 시내에 흩어져 있는 유명인사들의 묘를 이 곳으로 이장했다. 그 때 베토벤과 그를 흠모하여 그의 옆에 묻어 달라유언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묘지도 옮겨졌다. 브람스 역시 베토벤 곁에 눕고 싶어한 그의 바람대로 근처에 묻혔다. 모차르트 묘비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 사이에 있는데 허묘다. 그는 전염병으로 죽어 커다란 구덩이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묻힌 터라 묘지가 따로 없는데 그의 추종자들이 묘비만을 여기에 세웠다. 묘비들의 모양은 다양한데 상대적으로 베토벤의 것은 단조롭다. 조각상커녕 흔한 얼굴 부조도 없이 오각 비석에 금색 하프 모양 장식이 전부다. 그런데 그래서 더 돋보인다. ‘베토벤이란 이름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되묻는 듯 하다. 음악가의 묘역을 나와 성당에 들를 겸 묘지를 천천히 산책했다. 묘지라고 해서 음침하거나 섬뜩하지 않다. 엄숙함이 있을 뿐 공원에 가깝다. 게다가 그 날은 날도 너무 좋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 돔형 성당을 한 컷에 담으면 막 찍어도 작품 사진 나올 것 같다. 이 곳에 계신 분들의 평화로운 안식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