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은 매주 목요일 9시까지 연장 운영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활용할 참이다. 그 때까지 서너 시간 남았는데 따로 무엇을 할 지 정해 놓지 않았기에 일단 시내로 갔다. 점심 때가 한참 지나 출출한데 피그뮐러Figlmueller가 근처인 거 같다. 피그뮐러는 슈니첼 전문 레스토랑인데 네이버naver에서 무수히 접할 수 있는 빈의 맛집이다. 빈 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손님이 많았는데 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에게유명한 집인 셈인데 숨겨진 진짜 맛집을 알아 볼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낮은 성공률에 기대기보다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슈니첼은 아주 맛있지도, 아주 맛없지도 않은 정도였는데 듣던 대로 양만큼은 확실히 많아서 배는 충분히 불릴 수 있었다.

 

미술사 박물관으로 가기 전 월요일 휴관인 줄 모르고 갔다 헛걸음을 했던 제체시온Secession에 들렀다. 제체시온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빈 분리파의 회관 건물로 그들의 신전 같은 곳이다. 네 개의 작은 사각형 탑이 각 꼭지점 기둥이 되어 가운데 구를 받치고 있다. 구는 월계수 잎을 형상화한 금빛 장식으로 되어 있어 인상적인 외관을 만든다. 정문 위에는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라고 적어 놓았다. 분리파의 신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새겨 두고 싶은 문장이다. 미술 작품이나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도 아닌데 내부를 보겠다고 굳이 다시 찾은 건 베토벤 조각상이 있다고 들어서였다. 1898년 개관 후 1902년 제14회 분리파 전시회가 드디어 자신들의 신전에서 열렸고 그들은 신으로서 베토벤을 선택했다. 독일 조각가 클링거Max Klinger가 베토벤 상을 만들어 전시했고 이를 기념해 클림트는 전시실에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그 조각상과 그 벽화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9.5유로의 적지 않은 입장료를 지불했건만 베토벤 상은 전시되지 않고 있었고 [베토벤 프리즈]는 기대만큼 감동되지 않았다. 베토벤 교향곡 제9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Choral), Op. 125: “Ode to Joy”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클림트의 표현 세계는 나의 이해 수준보다 아무래도 한참 위에 있나 보다.

 

링슈트라세를 지나다 보면 남쪽으로 마리아 테리지아 상이 있다. 광화문의 세종대왕만큼 위엄이 있다. 그리고 여제를 중심으로 양쪽에 크고 화려한 쌍둥이 건물이 있는데 각각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Wien, 미술사 박물관이다. 미술사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은 합스부르크 황실의 것으로 소장품의 양과 질이 세계적 수준이라 들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되고 있어서 의욕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그러나 의욕은 빠르게 약화됐다. 작품이 많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초반에 너무 열심히 보려 한 탓에 체력이 급격하게 소진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타 언어의 것보다 가이딩하는 작품 수가 현저히 적었다. 의미도 잘 모르면서 보려 한 건 무모한 욕심이었다. 고대 이집트부터 중세, 근대까지의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과감히 시대들을 건너 뛰면서 설명이 있는 작품들 중심으로 보니 훨씬 나았다. 유명한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을 비롯해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의 풍속화들은 친근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반면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사계 중 [여름Summer]과 화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화법으로 그린 생선 정물화가 있었는데 인상에 남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역시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