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랩톱 어댑터가 명을 다한 탓에 아침 일찍 서비스 센터를 찾아 시내로 향했던 동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훈데르트바서하우스 건너편, 바로 보이는 트램 정류장으로 무작정 가서 확인하니 다행히 프라터Prater까지 가는 노선이 있다. 프라터는 오락장이나 유원지를 뜻하는 단어이나 오늘날 프라터는 빈에 있는 프라터 공원Wiener Prater를 일컫는 고유명사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데, 분명 재미있게 본 영화임에도 나는 영화 속 프라터 장면이 기억에 없다. 그래서 염두에 둔 곳은 아니었으나 초행자의 약속 장소로 대관람차만한 게 없다며 핑계를 삼았다. 프라터가 종착지였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웬걸 트램에서 내리니 사방이 잔디 벌판이다. 사냥터였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너무 깊숙이 왔나 보다. 잠시 당황했는데 대관람차가 프라터의 상징답게 멀게나마 보인다. 조급한 마음에 방향을 찾는 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놀이공원 특유의 소음이 가까워지는 걸 보니 제대로 왔다. 입구를 찾느라 조금 더 헤맨 후에야 동행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걸 알았다. 왜 연락부터 할 생각을 못했는지 자책하고, 놀이공원은 적절한 약속 장소가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무엇보다 걱정하며 기다렸을 동행에게 많이 미안해 하며 무사히 동행을 다시 만났다. 둘 모두 놀이기구를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바로 공원을 빠져 나왔다. 수선을 떤 후라 번잡한 곳에 더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간 곳은 알테 도나우Alte Donau, 요한 슈트라우스 2Johann Strauss ll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oenen blauen Donau]의 그 도나우 강이다. 왈츠 선율로 옮겨질 만큼 아름다운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여느 평범한 강이었다. 여름철에는 수영이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벌써 가을 초입이어서인지 보트 몇 대가 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강을 그냥 한참 봤다.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어서이기보다 그 고요가 좋아서였다. 동행에게 미안함은 여전했지만 마음은 한결 나아졌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