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는 얘기/기록2018. 11. 28. 14:41

연남동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곳이다. 마당을 끼고 있는 2층짜리 주택의 1층을 서점으로 개조했다. 앞마당이 작은 것 치고 나무와 풀도 많고 테이블과 의자도 분주해서 눈에 들어왔다. 날이 좋은 때에는 마당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나 싶었으나, 내가 찾은 날은 제법 쌀쌀해서 그랬는지 쓸쓸하게 내버려진 느낌이었다. 밝은 톤의 체크 무늬 테이블보와 원색으로 칠해진 의자가 빨간 벽돌과 나무 간판으로 된 책방과 어울리지 않아 어쩌면 책방에 속한 공간이란 느낌이 덜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마당을 지나 입구가 있는 곳은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출입문과 맞닿은 옆면에는 칠판 가득히 책방 소식을 적어 두었다. 오프라인 행사가 꽤 자주 있나 보다. 반대쪽 구석에는 키가 작은 탁자를 두어 명함 등을 두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콜드브루 커피 판매' 문구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못 본 듯한데, 다시 말하면, 차와 커피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닌 듯한데, 콜드브루 커피 원액과 와인을 판매하고 있어 특이했다. 서점 앞면은 통유리로 해서 내부가 훤히 다 보이는데 따뜻한 백열등 조명을 받은 빼곡히 찬 책장이 마음을 끌었다. 역시 책방은 책이다.

 

 

내부는 많이 좁다. 5평 안 되지 싶다.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소개글이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가져온 이름이라 한다. 주인장은 라디오 방송작가인 정현주씨다. 이 곳이 그녀의 첫 책방은 아니고, '드로잉북, 리스본'이란 전신이 있었다니 그림도 그리시는 분인가 보다. 밖에서 나의 맘을 잡은 안쪽 벽면 꽉 채운 책장이 수용하는 것만 1500권 정도, 중앙 매대까지 생각하면 2000권 규모로 짐작되는데 크기에 비하면 책은 적지 않다. 비치된 책은 정말 다양했다. 명확한 구분을 두지는 않았지만 순서대로 훑으면 또 아무렇게나 꽂은 것은 아니다.

 

입구와 가장 먼 구석에 피아노가 있다. 라디오 작가 출신으로 라디오 같은 공간을 바랐고, 공개방송같은 라이브 공연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나중에 웹사이트에서 봤다. 그런데, 행사가 있을  때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본 모습은 도무지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서 설명을 보고도 끄덕이지는 못했다. 웹사이트에는 이 외에도 책방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예로, 라디오 같은 공간을 바란다는 주인장은 실제로 주1회 정기 인터넷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다.

 

내가 감탄한 이 곳의 가장 특별한 마케팅은 '비밀책'이다. 포장이 되어 있는, 그 속에 어떤 책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비밀책을 판매하고 있다. 주인장의 안목을 신뢰한다면 주저할 것이 없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임의의 선택이 주는 떨림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솔깃하다. 이런 시도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바탕이 되었을까, 마당 입구에는 책방임을 표시하는 입간판과 함께 하나 더 세워져 있는데, 평소 책 취향을 알려 주면 책을 추천해 준다고 적혀 있다. 이것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주인장이 '글'에 대한 자신감이 남다르구나, 아무래도 문학을 공부한 작가라 그렇겠지.' 주인장은 <글쓰기 클럽>이란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작은 동네 서점'이다. 넓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책을 고르기에 주인장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만, 천천히 훑다 보면 오히려 대형 서점에서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놓치고 말았을 보석같은 책을 만날 것 같은 분위기, 단골이 되기라도 한다면 정말 친밀한 곳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생길 법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주인장의 자부심이 조금 부담스럽다.

Posted by nobel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