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0 13:57

[뮤지컬]내 마음의 풍금

'예전만큼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으니 매번 오랜만의 공연나들이가 된다. 그리고 그만큼 작품 선택에 신중해지면서도 또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아서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이미 평단과 관객의 평이 드러나 있는 재공연들이 물망에 오른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작년 한 해동안 가장 잘 된 창작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미 칸의 여왕 자리를 차지한 바 있으니 전도연이란 배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으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영화고, 전도연에게는 단지 세번째 영화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전도연의 홍연은 대단한 것이여서 그 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다 휩쓸었지 아마. 전도연이 표현했던 그 천진했던 촌스런 시골소녀와 또 그만큼 순진해서 뭘 좀 몰랐던 초등학교 갓 부임한 선생님의 풋풋한 첫사랑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정다감하게 펼쳐졌다. 그 장르가 무엇이든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어떤 퍼포먼스에 대해 '다정다감하다'라는 표현이 맞나 싶지만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정말 그랬다. 따뜻하고 다정다감하게 예뻤다.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구수한 무대와 따뜻한 조명 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직함을 더하신 신뢰하는 김문정 음악감독의 밝은 음악도 한 몫 하였을게다.


맘마미아 초연 때 앙상블이었으나 앵콜 때 배해선이 빠진 소피역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정미는 그 동글동글한 얼굴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서 홍연이를 연기하기에 참 적역이었다. 초연에서 오만석과 조정석이라는 거물들을 내세웠던 강동수역을 이번 공연에서는 이지훈, 이창용, 성두섭이 연기하는 데 나는 이창용의 강동수를 만났다. 처음 보는 신인이었는데, 관객 입장에서 조금 서툰 신인이어서 선생질에 서툰 강동수가 더 리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음악이 참 좋았다. 아무래도 뮤지컬 음악은 단순히 음악감상용이 아니라서 단순히 음악 그 자체로 잘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대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평가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창작의 맹점들이 주로 음악에서 보여지는데, 내 마음의 풍금의 음악들은 그만하면 잘 된 듯 하다. 음악들이 꼭 멋있는 느낌이 나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지, 쉽고 가벼운 리듬을 사용했지만 '내 마음의 풍금'에는 그런 음악이 필요했던 것이니 그것을 잘 잡은 것에 점수를 주는 것이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맘에 드는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쓰는 이와 보는 이의 감성을 일기를 매개로 보여 준 기법이 좋았다. 여기에는 홍연이의 일기 뿐 아니라 강동수의 일기도 포함된다. 작품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실의 의상과 환상속에서 보여지는 의상이 구분이 되는데, 그 환상 속의 분홍빛 의상들이 참 예뻤다. 단순히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직물의 소재가 구름 위 폭신한 것을 딛는 느낌을 실어줬다고 해야 할까? 

결말은 원작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걸까? 원작 영화에서 영화를 어떻게 맺었었는지 가물한데, 기억하는 건 어쨋든 마지막에 강동수와 홍연의 결혼사진을 보여줬던 거 같다. 무대에서는 일단 강동수가 홍연을 두고 떠나는 것으로 끝을 낸다. 그런데 커튼콜까지 모두 끝난 후 두 주인공이 뽀뽀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그 자세로 사진에 담기듯 사각틀이 두 사람을 담는다. 이 마지막 장면이 참 예쁘더라.

누가 노래를 참 잘하더라. 음악이 너무 멋있더라. 어떤 장면에서 춤이 최고였다.보다 이 작품은 서두에서도 말했듯 참 다정다감, 따뜻했다. 그 좋은 느낌으로 기억될 작품이다. 

 



Trackback 0 Comment 0
2009/06/13 23:09

[뮤지컬]바람의 나라

평단과 관객의 평도 좋고, 스스로도 보고 싶다 함에도 연이 안 닿는 작품들이 있다. 여유가 없어 때를 놓치거나 작품을 선택하는 순위에서 어쩌다 보니 밀리거나, 이런 저런 다양한 이유로......

'바람의 나라'의 경우, 초연이 2006년이고 이듬해 앵콜 공연도 했었는데도 이제사 연이 닿았다. 벼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이번엔 운이 좋게 시기가 맞았다.

요즘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초중반,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월간순정만화잡지는 꽤 붐이었고, 그 시작점에 아마 '댕기'가 있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내가 꽤 열심히 이런 저런 수단으로 매달 챙겨 봤던, 내 돈 주고 사기도 몇 번, 언니가 했던 댕기계에 빌붙기도 여러 번, 잡지였다. 연재되던 만화들 중 유명한 작품은 한 둘이 아니다. '불의 검', '풀하우스', 그리고 김진의 대서사시 '바람의 나라'도 있다. 이미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을 두고 원작에 대해 아는 체를 하려는 게 아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원작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를 넘어서 원작에 대한 이해와 경외심을 드러낸 듯 하였기에 짚고 넘어감이다. 참고로 뮤지컬 '바람의 나라' staff list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작.1차 각색: 김진 / 연출. 2차 각색: 이지나', 김진과 이지나는 어마어마한 대서사시를 두어시간의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서로 정말 많이 이야기했을 거라 짐작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그 표현방식에서 여타 다른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다. 대사와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지 않다. 그러나 눈과 귀는 바쁘다. 무대 뒷편에서 보여지는 대서사시의 이해를 돕는 영상을 쫓아가야 하고, 무대 이편 저편에서의 몸짓들을 하나라도 놓칠까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영상은 단순히 설명 문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만 쓰인 것이 아니다. 김진의 만화컷을 이용하여 주인공 무휼의 등장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앞둔 해명의 마지막을 묘사한 씬에서의 저승새 이미지 또한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이라기보다 이미지극, 무용극이라는 평을 받고 있듯 음악과 영상을 배경으로 두고 무대위에서의 몸짓들은 과연 양대 뮤지컬계 시상식에서 모두 안무상을 거머쥘 만 한 것이었다. 특히 고구려와 부여의 긴 전쟁신에서의 안무는 정말 놀라웠다. 그저 화려한 쇼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탭을 이용한 질주하는 말들의 표현과 바람 속에서의 칼놀림,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너무 세련되게 멋있었다. 가사가 있는 노래가 많지 않지만 국악과 양악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대서사시에 무려 랩도 나온다. 신기하게도 어색하지 않다. 많지 않은 노래지만 죽음을 앞둔 해명이 자신의 운명을 두고 부르는 노래나, 무휼과 호동의 엇갈리는 길에 대한 노래는 취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이건 가창력이 좋은 양준모의 역량 덕분이기도 싶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또 하나 인상에 남는 것은 의상인데, 화려한 듯 하면서도 절제된 미가 보인 주요 인물들의 의상도 물론이지만 앙상블들의 의상들이 난 더 기억에 남는다. 그것들은 그들이 표현하는 몸짓에 보탬이 되는 것들이었다. 초반 괴유의 등장에서 나왔던 마이크사고와 호동의 눈에 너무 띄었던 대사 실수가 아주 잠깐 거슬리긴 하였으나 공연장을 나섰을 때 예술의 전당 야외 음악분수가 더 아름답게 보이고 들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족 하나만 더, 괴유 역의 김산호는 이 역할로 꽤 많은 팬들을 얻었을 듯 싶다.

Trackback 1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