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걷다/Wien, Austria_2016

[Wien, Austria_2016] #03. 벨베데레

nobelnant 2017. 11. 8. 23:07

시차 때문인지 여러 번 잠을 깼다. 아니다, 새벽에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 탓이다. 이도 결국 시차로 인해 그 시간에 걸려 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휴가 중 업무 전화는 무조건 나쁘다. 결국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5시쯤 일어나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낯선 곳에 가면 성경 말씀 한 구절이라도 보고 하루를 시작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평소 안 하던 걸 하는 건데, 이런 날라리 크리스천의 기도도 들으실까 하다가도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속이 좁으신 분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로 했다. 예약한 숙박권에는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원한다면 비용을 따로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전날 저녁식사를 거르기도 했으니 든든히 먹기에 좋고, 만약 만족도가 높다면 머무는 동안 종종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12유로의 싸지 않은 가격에 비한다면 평범한 서양식 뷔페였기에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처음 간 곳은 벨베데레Belvedere. 벨베데레는 1683년 빈을 침공한 투르크 군대를 무찔러 전쟁 영웅이 된 오이겐 공Prinz Eugen이 지은 여름 궁전인데, 오이겐 공이 죽자 이 궁전을 합스부르크가에서 구입해 그들의 미술 소장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도 무너지고 궁전은 지금 오스트리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립 미술관이다. 궁전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상궁과 하궁, 두 건물로 나뉘어져 있는데, 상궁은 19, 20세기의 근대 회화를, 하궁은 중세에서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키스Der Kuss]로 대표되는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들이라니 우리도 대세를 쫓아 상궁 관람을 했다.

 

벨베데레는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를 읽고 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저자가 가장 감동하는 작품이라고 하는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오감五感 Die Funf Sinne]은 과연 그럴 만하였는데, 인간이 느끼는 감각, 즉 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을 표현하고 있는 다섯 여인들의 몸짓은 빨간 벽지와 너무 잘 어울려 시선을 잡았다. 가장 관심이 갔던 화가는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였다. 그는 초상화에 거의 모두 인물의 손을 그려서 얼굴뿐 아니라 손의 표정을 강조하고 또 인물이 아닌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2인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니, 그의 초상화들은 걸음을 멈추고 한 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알마 말러Alma Mahler와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예술가로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여인이라 하는데, 많은 연애 행각 중 특별히 각기 음악, 건축, 문학, 미술의 대가들인 말러Gustav Mahler,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베르펠Franz Werfel, 코코슈카에게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넷 모두 죽을 때까지 그녀를 품고 살았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말러의 음악은 좋아할 수가 없었고, 그로피우스의 건축은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베르펠의 소설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코코슈카의 그림에는 늘 감동을 받았다."

만년에 그녀는 네 명의 남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술회했다고 하니, 코코슈카가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렸다는 [바람의 신부The bride of the Wind]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 곳에서 볼 수가 없었다. 도통 찾을 수가 없어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다른 곳의 전시를 위해 옮겨져 있다고 한다. 언젠가 나와 연이 닿을 날이 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클림트의 방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어린이 단체 관람객도 있었는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이가 클림트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우연히 들으니 그의 황금시대그림들은 실제 금이 사용됐다고 한다. 다시 보니 [키스]는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다. 벨베데레에서, 아니 빈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클림트는 사실 빈 곳곳에서 기념품 폭격으로 만난다. 흔한 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법, 그래서 오히려 감흥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었다. 진짜 금이 내는 빛은 사진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림 얘기를 하다 보니 이제서야 말하게 되었는데, 시간상으로 상궁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1층의 기둥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곳은 귀족들이 사용하는 1, 우리가 생각하는 2,의 아래층으로 하인 계급이 쓰던 곳이라 층수에서 제외되기에 1층이라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아래층, 하인들,의 기둥들은 고통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윗층,귀족들,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사실적인 묘사라니!’라는 놀라움을 넘어서는 건 이런 조각이 당시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라는 설명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러한 차별이 당연하게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벨베데레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도 있었다.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산책한 정원에는 연못을 빙 둘러 각종 동물 머리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하나하나 보니 십이지 동물들이었다. 유럽에서 십이지라 너무 의외였는데,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 Wei 특별 전시의 한 작품이었다. 작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그 반대의 경험도 했다. 상궁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또 다른 중국 현대 미술가, 얜페이밍Yan Pei Ming, [예수 수난도]는 실제 십자가상 대신 그림을 걸어 놓고 제단을 꾸며 놓았다. 금속 촛대 위에 붓질 느낌이 적나라한 회화는 이질감이 강해 오히려 인상에 남았는데,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그린 중국인이 많이 생경했다. 예술품을 감상하기에 편견 그득한 나를 발견한 듯 하여 흠칫.